‘처형설’ 제기된 北 리용호는…‘대미 외교 핵심’ 정통 외교관 출신


리용호 전 북한 외무상. 2018.8.4 뉴스1리용호 전 북한 외무상. 2018.8.4 뉴스1

4일 일본 언론에서 ‘처형설’이 제기된 리용호 전 북한 외무상은 정통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인사로 지난 2018년 북미 비핵화 협상 때 외교라인의 책임자로 전면에 나섰던 인물이다.

1956년 생으로 파악되는 리용호는 당 조직지도부 간부를 지낸 리명제의 아들로 소위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볼 수 있다.

평양 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1985년 스웨덴 주재 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이 본격 시작됐다.

1994년부터 북미 대화에 관여한 전형적인 대미 외교통으로 분류된다. 2001년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북측 단장을 맡았으며, 2010년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한 뒤 이듬해 북핵 6자회담의 수석대표를 맡기도 했다.

6자 회담은 리용호가 수석대표를 맡던 시기에는 사실상 ‘결렬’이 된 상태였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당 내의 주요 직위를 꿰차기 시작한 그는 2016년 5월 외무상에 임명된다.

2018년은 리용호의 활약이 크게 두드러졌던 시기다. 당시 북한이 전향적으로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다. 그는 외무성의 수장으로 당시 최선희 부상과 함께 핵심 실무자로 협상 전략을 구상하는 등 깊이 회담에 관여했다.

리용호는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쪽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최선희와 함께 새벽 기자회견에 나서는 등 전형적인 북한의 관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며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면서 회담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등 ‘북한의 입’ 역할을 했다.

리용호는 거친 언사가 특징인 전형적인 북한 당국자에 비해 외교적 매너와 유려한 언변을 갖춘 ‘세련된’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비핵화 협상 당시 미국에서 북한의 수석대표로 리용호가 나서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당시 북한의 수석대표였던 김영철이 ‘외교관’ 출신이 아니어서 소통에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리용호는 비핵화 협상이 열리기 전인 지난 2017년에는 ‘역대급’이라는 남한식 표현을 사용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7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사상 최고의 대응”을 언급하며 대외적으로 위협의 강도를 높이자 같은해 9월 제72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리용호의 뉴욕 방문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기자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는데, 김 총비서의 발언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다 알 수 없다”면서도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 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발언한 것이다.

리용호는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외무상으로서 북미 대화에 계속 관여를 했다. 지난 2019년 6월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했을 때도 배석했다. 그러나 결국 북미 비핵화 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입지가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 2020년 1월 외무상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나 보도 없이 다른 정보를 통해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가 ‘처벌’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후 최근까지 그는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정부는 이날 요미우리 신문의 ‘리용호 처형설’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북 정보사항에 대해 ‘정확한 확인’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도 전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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