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측 “범죄 부인하고 책임 감추기 급급” 반발
고등군사법원 폐지로 서울고법서 항소심 진행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압수수색과 긴급 체포, 구속까지 번갯불에 콩 볶듯 이뤄졌다. 군 사법기관의 고소사건 중 이 정도의 속전속결이 있었나 의심이 들 정도다.”
지난달 31일 서울고등법원 505호 법정. 군복 차림의 노모 준위(53)가 준비해온 종이를 보며 최후 진술을 읽어내려 갔다. 그는 부대 내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예람 중사에게 ‘2차 가해’를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준위는 “1심 판결은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인용하고 증인의 추측도 (사실처럼) 인용했다”며 “(1심 판결이) 여론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고 1심 판결에 반발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 강요 및 보복 협박, 강제추행 등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노 준위는 “거짓은 제가 아니고 고소인(피해자 가족)이 말하고 있다”며 “피해자 가족의 아픔은 이해하나 제가 하지 않은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면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와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강석민 변호사도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희)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을 방청석에서 지켜봤다. 재판장이 피해자 측에게 진술 기회를 주자 강 변호사는 “피고인의 행위와 망인(이 중사)의 사망 간의 인과관계는 특검 수사로 밝혀졌고, (성추행 가해자) 장모 중사에 대한 판결에서도 명확히 인정된다”며 “그럼에도 (노 준위는) 범죄를 부인하고 책임을 감추기 급급하다.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일부 무죄 판결한) 원심 파기해 유죄로 (판결)해주고 엄히 처벌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노 준위는 이 중사가 지난해 3월 2일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다음 날인 3일 피해사실을 보고받았으나 사건을 무마하려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노 준위가 이 중사에게 “장 중사를 (다른 부대에) 보내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공론화를 시켜야 분리랑 전속이 가능한데 공론화를 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다 피해가 간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보복협박과 면담강요 혐의를 적용했다. 노 준위는 해당 발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1심 재판부는 면담강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노 준위의 발언이 협박죄의 성립 요건인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보복협박 혐의는 무죄로 봤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출할 증거나 주장은 없다고 밝혀 공판은 하루 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검찰은 노 준위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29일 선고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고등군사법원 폐지로 7월 1일부로 모든 군사재판 항소심을 민간 법원이 맡게 되면서 노 준위 사건도 서울고법으로 이관됐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