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인 군인들이 ‘영외의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로 항문성교를 비롯한 성행위를 한 경우에는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기소 근거가 된 군형법 92조의6항은 앞서 헌법재판소가 세 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김재형 대법관)는 4월 21일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중위와 B상사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지난 2016년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상호 합의하에 두 차례에 걸쳐 성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군형법 제92조 6항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피고인 A중위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B상사에게는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으며, 군검사와 피고인 양측 모두가 항소해 열린 2심(고등군사법원, 원심) 역시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그대로 유지한 바 있다. 그러나 쌍방상고로 진행된 3심(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무죄 부분에 관한 군검사의 상고는 기각하고, 유죄 부분에 대한 피고인의 상고는 파기 환송함으로써 사실상 무죄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동성인 군인 사이의 성관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 제92조의6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전원합의체 11(무죄) 대 2(유죄)로, 앞서 남성 군인 간 성행위를 군형법상 추행죄로 판단한 2008년과 2012년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무죄’ 다수의견을 낸 8명은 “동성인 군인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이를 처벌하는 것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명의 대법관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되는 것이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 대법원의 종전 해석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유죄’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한편 나머지 3명의 대법관은 무죄 결론에는 찬성하면서 다수 의견 일부에 이견을 개진한 별개 의견을 표했다. 결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사적 공간’과 ‘군기침해 여부’ 등에 주목하며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처벌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판결 직후 그동안 군형법 제92조6 폐지 움직임에 맞서온 교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했다.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 김영길 목사는 “군형법 제92조6은 헌법재판소가 이미 세 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만큼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헌재 결정에 배치되는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법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법해석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판결이 동성애 행위 주체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번 판결은 행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군대라는 특수사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계급사회인 군대 내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의 추행 시도를 막기 위해 군형법 92조 6항이 존재하는 것인데, 이를 무력화시켜 버렸다는 주장이다. 김 목사는 또 이번 판결로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는 관련 ‘위헌’ 소송 및 동성군인 간 성관계로 기소돼 하급심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의 판단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군 선교 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을 비롯해 한국교회 10개 교단이 협력하는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이사장:김삼환 목사)는 지난 2017년 ‘군형법 제92조의 6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하고 폐지 반대 입장을 낸 바 있다. 사무총장 이정우 목사는 “당시 결의는 군종목사 파송 10개 교단 모두가 서명한 것으로, 지금 현재도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교단들과 적절하게 준비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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