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30세로, 12세에 부모님을 따라 선교지로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 서강춘 선교사님은 GMS 선교사로, 2003년 6월 3일에 우크라이나에 파송 받아 사역하던 중 신종플루에 확진되어 투병하시다가 2009년 11월 9일에 순직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인 하르키우에 안장되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우크라이나에 남아서 우크라이나인들을 섬길 것입니다.
저는 16세이던 2007년 6월 GMS MK수련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살려달라’고 외치며 주님께 서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11월 8일, 아버지가 신종플루에 걸려서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도 아들인 저를 “목사님, 목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마지막 말씀이 하나님이 제게 선교 사명을 주시는 아버지의 유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우크라이나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17년 GMS에서 선교사 특별과정 훈련을 받고 3월 9일에 GMS 선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우크라이나인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크라이나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살고 있으며,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크라이나는 아이들의 고향이자, 저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주님께서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맺으셨습니다. 저는 우리 가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실 일이 클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지난 2월 13일, 대한민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한국인에게 철수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경우에도 우크라이나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 저의 아내와 처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바치셨던 아버지의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우크라이나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에도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어린이 시설을 포함한 아파트와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지난 1개월 동안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물, 전기, 가스, 식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두렵기도 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현지인 목회자들과 함께 폭격을 피해 지하철로 대피한 사람들에게 음식, 베개, 이불, 매트리스 등과 같은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전기가 5일 동안 공급이 안 되어 발전기를 주문했는데 기적적으로 하루 만에 도착했습니다. 발전기를 가동하여 난방과 취사에 필요한 전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 중 아무도 다치지 않고, 크게 굶주리지 않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교회의 성도들과 현지인들의 아픔과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미약하나마 힘닿는 대로 급식사역과 지하철 대피소에 있는 난민들에게 구호사역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대면하여 예배를 드릴 계획입니다.
파송교회(예수인교회, 민찬기 목사)와 GMS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물질로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기도는 가장 큰 힘이 되고, 물질은 어려운 피난민들을 위로하는 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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