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ble to retrieve full-text content]
@media only screen and (max-width:640px) {.stb-container {}.stb-left-cell,.stb-right-cell {max-width: 100% !important;width: 100% !important;box-sizing: border-box;}.stb-image-box td {text-align: center;}.stb-image-box td img {width: 100%;}.stb-block {width: 100%!important;}table.stb-cell {width: 100%!important;}.stb-cell td,.stb-left-cell td,.stb-right-cell td {width: 100%!important;}img.stb-justify {width: 100%!important;}}.stb-left-cell p,.stb-right-cell p {margin: 0!important;}.stb-container table.munged {width: 100% !important; table-layout: auto !important; } .stb-container td.munged {width: 100% !important; white-space: normal !important;}
아이작 뉴턴은 위조화폐 범죄수사도 전문가였다.
|
|
|
1600년대 말 윌리엄 3세 시대 영국은 위조화폐로 골머리를 앓았다. 위폐범은 물론 참여한 직공들도 손목을 잘랐지만, 돈을 만들어 돈을 벌려는 사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유통되는 동전의 20%가 가짜인 지경이 됐다. 영국은행 창립 멤버 찰스 몬터규는 부패한 왕립 조폐국을 바꿔야 한다며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감사관으로 추천했다. 이 감사관은 집요하게 위폐범을 추적했고, 수십 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1699년 조폐국장까지 올라 25년간 화폐 개혁을 이끈 이 인물이 바로 아이작 뉴턴, 만물의 법칙을 수식으로 표현해 낸 천재였다.
뉴턴은 합리적 추론과 함정 수사, 스파이를 동원한 심리전으로 위폐 조직을 와해시켰고 조폐국 인력과 기계 수요를 계산해 재배치했다. 불량 화폐 문제도 해결했다. 금·은으로 만든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는 ‘클리핑’은 기원전 6세기 리디아 지역에서 시작돼 뉴턴 시대까지 이어졌다. 동전은 동전대로 사용하고, 깎아낸 금·은은 팔거나 동전 위조에 활용하는 식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사라지게 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바로 불량 동전이 계속 늘어나는 현상에서 비롯됐다. 뉴턴은 동전 가장자리를 톱니 모양으로 만들었고, 톱니가 사라진 화폐는 유통되지 않게 됐다. 2000년 넘은 난제(難題)에 대한 뉴턴의 답은 오늘날 동전에도 남아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100달러 지폐의 얼굴 벤저민 프랭클린도 화폐 전문가였다. 미국 노트르담대 연구진은 지난 17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프랭클린이 만든 지폐를 현미경과 레이저로 분석한 결과 시대를 앞선 인쇄와 제지, 잉크 기술을 발견했으며 위조지폐 판독에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열두 살 때부터 인쇄소에서 일한 프랭클린은 스물네 살에 인쇄소를 차렸고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정부와 4만파운드를 찍는 계약을 하면서 조폐 사업에 진출했다. 연구팀은 대학 도서관의 18세기 미국 지폐 600장을 살펴 프랭클린 지폐에서 세 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우선 프랭클린은 지폐의 종이에 필라델피아 지역 광물 백운모와 파란 실을 넣었다. 연구팀은 이 반짝이는 광물이 종이 지폐의 내구성을 높이는 동시에 위폐 판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
|
|
[김윤덕 칼럼] 스무 살 병사들 얼마나 더 희생해야 ‘대한강군’ 될까
|
|
|
2년 전 여름,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강원도 최북단 비무장지대(DMZ)에서 스무 살 청년이 스러졌다. 사인(死因)은 열사병이었지만 순직한 병사의 어머니는 “국가의 무관심이 내 아들을 죽였다”고 절규했다.
그는 코로나 1차 접종 후 일주일도 안 돼 훈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수색작전에 투입됐다. 밧줄을 잡고 가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른 산길로, 숙련된 대원들도 힘겨워하는 작전지였다. 일반 의무병이라 방탄조끼에 방탄모를 쓴 채 등에는 군장을, 가슴엔 아이스패드가 든 박스를 맸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이었다. 결국 의식을 잃은 병사는 대원들 등에 업혀 산길을 내려오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왜 헬기를 띄우지 않았느냐는 유족들 항의에 군은 작전지역이 험해 불가능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9·19 군사합의로 인한 ‘군사분계선 비행 금지’ 때문이라는 후문이 돌았다. 일병의 어머니는 “엄마가 장관이고 아빠가 국회의원이었어도 그랬을까. 억울한 죽음은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이 아니었다. 입대 4개월 차인 스무 살 일병이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주변 지형지물 파악이라는 기본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채 병사들 머릿수로 밀어붙인 군의 무모한 작전 탓이었다. 지휘부는 장갑차도 유속을 못 이겨 철수한 하천에 병사들을 맨몸으로 집어넣었다. 안전로프도 없었다. 구명조끼 없는 빨간 셔츠엔 ‘해병대’라는 세 글자만 선명했다.
|
|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89] 피카소를 버린 여인
|
|
|
올해 6월,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1921~2023)가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을 영화로 만들면 길기는 해도 지루할 틈은 없을 것이다. 질로는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과 대학에 다니면서 몰래 그림을 그리다 21세에 파리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즈음 마흔 살 연상의 피카소를 만났다. 당시 피카소에게는 아내와 여러 애인이 있었지만, 함께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족처럼 산 사람은 질로였다. 그러나 질로는 10년 동안 한결같이 다른 여자를 탐하던 피카소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피카소의 여자 중 그에게 이별 통보를 한 건 질로가 유일했다. 피카소는 그녀의 앞길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굴하지 않았던 질로는 화가이자 교육자로 성공했다.
‘파란 프랑스식 창’은 질로가 17세에 그렸다. 구도가 단순하고 형태가 투박하지만 유리창 뒤에서 하늘거리는 커튼의 질감을 표현한 데서는 예리한 관찰력이, 발코니 난간 너머 펼쳐진 알록달록한 언덕에서는 세상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10대 소녀의 활달한 기질이 엿보인다.
질로의 첫 미술 선생님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연필 대신 수채 물감을 쓰게 했는데, 실수해도 지우개로 쉽게 지울 수 있는 연필보다 지우기 어려운 물감이 초보자를 정직하고 엄격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감으로 잘못 그리면 형태와 구도 전체를 바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피카소가 질로 인생의 실수였다면, 그녀는 피카소를 지우는 대신, 대범하게 덧칠을 하고 그 위에 누구보다도 다채롭고 영광스러운 삶을 그렸다.
|
|
|
[특파원 리포트] 미국 大入제도는 모범 아니야
|
|
|
교육부가 7월 말~8월 초 사이에 2028학년도 대입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마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해 일정 점수만 받으면 대입 자격을 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점수로 ‘줄 세우기’를 안 하겠다는 뜻인데 그러면 대학별 입학 시험을 치르게 되는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지 알쏭달쏭하다.
어떻게 대입을 치러야 좋을지 묘안은 없다. 다만 수능을 무력화하고 학업 성적 외의 요소를 많이 반영하는 방향이 한국 사회에 맞는지 의문이다.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입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인종 우대)’을 위헌으로 결정한 후,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입 관련 논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학업 성적이 하위 40%에 속하는 흑인 미국인 지원자의 합격률(12.8%)이 상위 10%에 속한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의 합격률(12.7%)보다 높았다”며 어퍼머티브 액션이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 판결 직후부터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히스패닉에게 유리한 어퍼머티브 액션을 폐지한다면, 주류 백인에게 유리한 ‘레거시 입학’ 제도도 폐지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쟁이 일어났다.
레거시 입학은 고액 기부자나 교직원·동문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다. ‘민권을 위한 변호사들’이란 비영리 단체에 따르면 2019년 하버드대 졸업자의 28%가 레거시 입학을 했다. 고액 기부자나 동문 자녀가 하버드대에 지원하면 합격률이 다른 지원자보다 6배나 더 높다. 이런 지원자의 70%는 백인이라고 한다.
|
|
|
[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34] AI 시대에 배워야 할 것
|
|
|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딩을 해준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사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나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50대가 넘은 우리 기성세대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인류 문명의 모든 혜택을 다 받고 살다 인공지능에 밀려나기 바로 전 은퇴할 테니 말이다. 지금 30~40대도 이미 전문 지식과 직장을 가지고 있고,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면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문제는 10대다. 이들은 아직 자신만의 전문 지식과 사회 경험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직장을 구해야 할 10년, 20년 후엔 인간이 하던 일을 대부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량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오늘날 10대는 처음으로 인공지능과 경쟁해 일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들에게 기계와 경쟁해서 이길 능력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그런 능력이 무엇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학자의 역할은 지금 이 순간 듣기 좋거나 믿고 싶은 걸 확인해주는 게 아니다.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실과 자료만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게 과학의 필연적 의무다.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쳐야 할까요? 아니면 드론 조종사로 키워야 할까요?” 두려움과 기대로 가득 찬 부모들의 이런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대답해준다. 인공지능 시대에 100% 안전한 직업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성형 인공지능은 역사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여전히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기에, 인간의 어떤 능력까지 대체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언제 대체될지 모르는 특정 기술이나 기능에 집착하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도 그때 필요할 지식과 능력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적응력, 상상력, 판단력, 그리고 회복 탄력성 같은 ‘메타 인지’ 능력을 지금 우리는 10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