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심이 들여다보이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김제 연정교회(조병남 목사)는 이주민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품은 공동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지난해 11월 김제시 신풍동 소재 믿음병원 경내의 한 건물에 ‘다민족교회’라는 새로운 간판이 붙었다. 연정교회가 필리핀 베트남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활발한 신앙생활을 돕고자, 온 교우들의 정성을 모아 마련해 놓은 공간이었다.
110평 규모의 건물 1층을 세 공간으로 구분해 평소에는 필리핀교회 베트남교회 네팔교회가 각기 독립적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다 함께 모임을 가질 수도 있도록 배치해 놨다.
연정교회가 다민족 사역을 시작한 것은 약 20년 전부터이다.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이 대거 몰려왔고, 특히 김제지역에는 많은 필리핀인이 정착했다. 이들을 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할 필요성을 느낀 조병남 목사와 교우들은 고심 끝에 5년 만에 연정필리핀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의 교회’를 세웠다.
연정필리핀교회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이들을 위한 전담 교역자와 지원팀이 세워졌고, 상담 의료 구제 등 다양한 섬김이 이루어졌다.
조병남 목사 가족들은 특히 다민족 사역에 앞장서 헌신하는 본을 보였다. 전미자 사모는 상담역을 맡아 이주민들을 직접 상대하며,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딸 의령씨는 사단법인 다민족사랑공동체 간사로 활동하며 이주민들의 일자리 알선 등 갖가지 고충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성도들도 그 본을 따라 물심양면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명절이나 교회절기가 돌아올 때면 함께 찬양하고 음식도 나누며 연정교회 성도들과 필리핀인들은 점점 한 몸이 되어갔다. 연정필리핀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지역 최초로 다문화여성배구팀과 어린이축구단이 결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 삼아 6년 전에는 연정베트남교회가, 최근에는 연정네팔교회가 연이어 탄생했다. 사실 한 교회가 한 민족을 섬기는 것도 버거운데, 자체 규모가 크지 않은 농촌교회가 무려 세 민족을 섬기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목받을만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정교회는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당초 교회당 안에서 운영되어온 다민족교회들에 별도의 처소를 마련해주기로 과감히 결정한 것이다.
“사실 개인 교통수단이 없는 다민족 성도들이 도시 외곽에 있는 연정교회까지 찾아오는 데는 적잖은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면 불편을 줄이고, 주일예배와 평일모임도 활성화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조병남 목사의 설명은 간단하지만, 사실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모교회에서 거리가 떨어져 지내다 보면 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될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교우들은 이번에도 이주민의 편에 서서, 기꺼이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하여 다민족교회의 독립이 이루어진지 몇 달이 지난 현재, 우려했던 문제보다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시내로 거처를 옮기면서 각 모임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청년들을 비롯해 시내에 거주하는 성도들도 수시로 이곳을 찾으면서 오히려 만남과 교류가 잦아졌다. 잘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오는 중이다.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필리핀교회는 결혼이주여성 출신인 로즈 씨와 의료선교사 출신인 이대영 목사가 함께 사역하면서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천주교문화권에서 성장한 이들이 대부분이라, 초반에는 개신교 신앙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잘 성장한 상태이다.
베트남교회는 총신신대원 재학 중인 이정현 전도사가 담당한다. 매주 1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데, 그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유학생들을 위해 장학제도까지 마련하면서 정성껏 돌보며 신앙을 격려하고 있다.
네팔교회의 경우는 연정교회 다문화사역에 동역하는 김제 신세계병원을 통해 네팔 출신 다문화가족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일이 계기가 됐다. 힌두교권 지역 출신들임에도 독실한 기독교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있어 제법 탄탄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정동철 선교사가 책임을 맡고 있다.
세 교회는 매월 첫 주 연합예배로 모인다. 1년에 네 번 정도는 연정교회의 한국인 성도들과 다문화교회들이 연합하는 자리도 만든다. 이들이 다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장면은 계시록에 등장하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연상시킨다.
연정교회는 이 거룩한 무리 속에 또 하나의 교회를 들여놓는 새로운 비전에 착수하고 있다.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로 세우는 일에 소망을 품고 준비하는 중이다.
조병남 목사는 “앞으로도 이주민 선교사역에 더욱 힘을 기울이는 한편, 이주민들의 복지와 인권문제를 도와줄 센터를 개설할 꿈도 꾸고 있다”고 포부를 밝힌다. 연정교회가 나아갈 길은 여전히 광대하다. 그리고 그 먼 여정 내내 연정교회는 이주민들의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