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영화 평론에서는 700만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영화 <파묘>를 파헤칩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을 만든 오컬트 전문 크리스천 감독 장재현 연출의 이 영화에는 풍수사 역의 최민식(김상덕), 젊은 무당 김고은(이화림), 장의사 유해진(고영근), 법사 이도현(윤봉길) 등의 배우를 비롯해 김선영(오광심), 이다윗(사진사), 김재철(박지용), 김민준, 전진기(박근현), 박정자(고모), 이종구(보살), 이영란(배정자), 김지안(박자혜) 등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평론에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무속과 풍수지리를 추종하는 이들 사이의 주술 대결을 소재로 삼는 영화, <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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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 풍수지리, 반일감정 적절히 섞은, 강력한 흥행공식
과학기술로 부강해진 한국인들, 여전히 주술적 세계관 머물러
영화, 감정적 만족 제공하지만 무속과 풍수 올바른 평가 막아
한일 양국 미개함 다투는 꼴, 기독교 신앙만이 불행 해소 가능
◈종교과 미신: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속과 풍수
영화 <파묘>는 한국인들의 전통사상인 묫자리 및 풍수지리와 관련된 작품으로, 2018년 개봉된 영화 <명당>과 비슷한 모티브를 공유하는 작품이다.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의 장손 집안이 신병을 앓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름난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힘을 합쳐 한 기괴한 무덤과 관련된 심령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
작품의 주요 소재는 한국과 일본 양국 전통종교 사이 벌어지는 대결이다. 영화 <파묘> 줄거리는 한국식 무속 샤머니즘과 일본 신토의 애니미즘(정령신앙)이 서로 대결을 벌이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자행된 제국주의 침략 역사와 고위 친일파들에 의해 자행된 매국(賣國)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영화 <파묘>가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서 무속 관련 서사에 흥미를 더하는 점은 2016년 개봉된 영화 <곡성>과 비슷한 점이 있다. 즉 <파묘>는 그동안 한국 심령스릴러 장르의 가장 강력한 흥행공식인 무속 샤머니즘, 풍수지리, 그리고 반일감정을 적절히 섞어놓은 작품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런 서사 및 연출 전략 덕분에 현재까지 나쁘지 않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
영화 <파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서사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양자물리학과 컴퓨터공학 기술이 인류의 문명 발전을 주도하는 21세기 현재까지도 우리 한국인들의 개인적 삶의 영역에서는 무속과 풍수지리 사상이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둘째, 종교적 주술이 개인을 넘어 기업 운영과 국가 행정에 깊게 관여할 만큼 동아시아 각국의 문명발전 수준이 뒤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가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지역의 불가피한 불행이다.
개화기에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근대화가 이뤄지기 전, 한반도에는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에게 체계적 관찰과 실증적 실험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속의 미신들과 도교, 불교, 유교 형이상학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탓에 끝내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 관상 등 주술적 속성이 강한 세계관 및 인간 이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우리 한국인들의 의식에서 전근대적인 주술적 세계관이 다소나마 힘을 잃게 된 것은 첫째로 구한말 선교사들이 여러 기독교 학교를 세워 민중의 계몽에 힘쓴 덕분이고, 둘째로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적 문화쇄신을 추진한 덕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도 무속 샤머니즘과 풍수지리설의 영향력 약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바 있다. 새마을 운동이 미신 타파를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역 향촌의 농경 및 생활 방식 전체를 근대화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당과 한국 전통 주술문화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떨어지게 된 것이다.
▲무속과 풍수지리에 대한 삶의 의존도를 낮추도록 기독교 선교를 적극 지원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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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신: 과학을 대신했던 무속과 풍수, 민족의 해악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의 전통적 종교 주술과 세계관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대화되지 못한 영역에 자리를 잡고, 끈질기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꽤 기괴한 현상이 발생한다.
첨단 IT 기술에 국운을 걸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무속과 풍수지리, 주역, 관상 등이 삶의 방향이나 사업, 정치동향을 좌우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례로 첨단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을 일궈낸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저명한 풍수사들에게 의뢰해 선친의 묘를 이장하고, 자신의 묫자리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사실 전근대 한국, 즉 조선과 고려 시대를 포함한 중세 및 고대 한반도에서는 무속,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설, 주역, 관상 등이 인간과 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자연과학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런 전통적 종교요소나 주술에 실증적 근거가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무속은 신접한 자들과 신병 발병 현상 등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줬고, 풍수지리는 인간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 만한 환경 조건들을 따지다 그 노하우가 체계화돼 하나의 형이상학적 원리로 발전된 것이다. 음양오행설은 자연 생태 속 물질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것을 체계화했고, 주역과 관상 이론은 인간 삶의 정황과 외모, 그리고 각 삶의 궤적 등을 관찰하면서 공식처럼 정리된 것이다.
▲무속과 풍수지리, 음양오행설, 주역, 관상 등은 발전된 자연과학 지식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던 전근대 한국에서 세계와 인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사고의 틀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이 사고의 틀은 정확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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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전근대 한반도 사람들은 이렇게 샤머니즘과 도교를 바탕 삼아 형이상학적으로 정리된 이론들을 따르다가 문명 발전에서 서구에 크게 뒤처지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민생 개선 또한 정체돼 사람들이 늘 가난과 질병, 그리고 무지로 고통받았다. 이는 한국 전통종교가 전한 가르침과 세계관이 인간의 현실적 삶에 맞지 않는 오류 투성이의 불완전한 세계 이해 방식이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묘>에 등장한 조상 귀신이나 일본의 오니 같은 것들의 경우, 그와 관련된 체험과 현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본모습에 대해서는 완전히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서도 귀신이 인간에게 신체적·정신적·영적으로 해를 입힌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이것을 극복하려면 인간의 주술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힘입어야 한다는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양쪽 가르침의 실효성과 보편성 여부를 따져 보면 무속은 영적 세계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반면, 성서의 가르침은 전 세계 믿는 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은혜가 되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영화 <파묘>는 한국의 전근대적 세계관과 형이상학을 집대성한 무속과 풍수를 삶의 평안과 정의를 보장하는 데 유익한 지혜처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거가 빈약한 한민족 중심주의 혹은 한민족 우월주의가 반영돼 있다. 이는 ‘신토 애니미즘을 추종하는 일제 음양사(陰陽師)와의 주술 대결’이라는 영화 소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 <파묘>는 민족적 우월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우리 민족의 문명 발전을 크게 저해한 전통 종교요소와 주술을 마치 우리 민족만의 고유하고 우월한 지혜의 체계로 포장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민족의식과 반일감정을 부추겨 감정적 만족을 제공하는 대신, 우리 민족에게 오랜 세월 해악을 끼친 무속과 풍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평가를 가로막는다.
<파묘>에 묘사된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이 풍수에 집착하는 작태(특히 중요한 지맥이 있는 곳에 꽂힌 쇠말뚝을 두고 싸우는 작태)는 마치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미신에 집착하는지, 어느 편이 더 계몽되지 못했는지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한일 양국의 종교전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미개한지를 다투는 이 영화 서사에 관객들이 호응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영혼에 대해 우리 민족 고유의 편협하고 부정확한 인식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서적으로 정확하고 올바른 기독교 신앙만이 이런 불행한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 <계속>
▲한일 양국의 종교전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미개한지를 다투는 이 영화의 서사에 관객들이 호응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리고 영혼에 대해 우리 민족 고유의 편협하고 부정확한 인식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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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