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동행취재]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의 하루 < 성탄특집 < 기획/해설 < 기사본문



“공허한 어둠 속 우리는 헬렌 켈러를 꿈꿉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데프블라인드 혹은 시청각장애인이라 부른다. 이들은 ‘소수중의 소수’로서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받기 어려울뿐더러 매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국에 두 곳뿐인 시청각장애인학습센터, 이들 중 하나인 밀알복지재단의 ‘핼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의 하루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주시하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많이 울었어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는 게··· 인생이 참 많이 외롭고 답답했답니다. 내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 매일매일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어요. 하루가 공허한 감옥 같았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전국에 현재 약 1만여 명으로 집계가 될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특수학교 선생님들도 시청각장애인들을 보기란 인생에서 한 명 볼까 말까다. 그러다 보니 시청각장애인들은 교육은커녕 밖에 나가 뭔가를 하기조차 어렵다.






맞춤형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강의를 진행하며 설명, 수어, 속기 세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맞춤형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강의를 진행하며 설명, 수어, 속기 세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수서역의 한 건물, 사람들이 각자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다양한 손동작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다. 눈을 감고 있거나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이들의 손만큼은 서로를 꽉 붙잡고 있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시청각장애인 직업훈련 수료식이 열리는 자리다. 오늘 수료식에서는 처음으로 3명의 수료자가 배출되는 순간이다.


“잠깐…만요. 제가… 읽는…게… 느려… 1분만… 시간을… 주세요.” 수료자 중 한 명인 김지현 씨가 점자를 더듬으며 자신이 적어놓은 소감문을 읽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며 집중하고 있다. 옆에 있던 수어 통역가 이순민 씨도 지현 씨의 수어를 보기 위해 집중하며 누구보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김지현 씨가 농인과 촉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해맑게 웃고 있다.
김지현 씨가 농인과 촉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해맑게 웃고 있다.


“일은 저의 열정 그 자체에요.” 기쁘게도 수료 자 중 한 명인 김소영 씨는 다음 달 점자 명함을 제작 하는 곳에 취업을 앞두고 있다. 교육을 받던 중 열성적인 모습과 빠른 습득력이 김동복 대표(도서출판 점자, 시각장애1급)의 귀에 들린 것.


“이 훈련을 통해 깨달은 게 많아요. 그동안 집에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교육을 통해 제가 사회 일원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또 앞서 말씀해 주신 수료자분들처럼 이 길을 걸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윤세웅 간사가 농인의 질문을 받기 위해 통역사의 촉수화로 질문을 전달받는 모습
윤세웅 간사가 농인의 질문을 받기 위해 통역사의 촉수화로 질문을 전달받는 모습


이번 직업훈련 교육기간 동안 이들을 가르쳐 온 이효성 박사(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장)와 김영준 박사(장애인기업가정신센터 대표)는 오늘 이들이 직접 쓴 손 편지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앞이 안 보이는 제자들에게 부끄럽기라도 한 듯 천장을 올려보며 웃음과 눈물을 보였다.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던 걸까.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교육을 받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쓴 손편지.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교육을 받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직접 쓴 손편지.


강사들에게 교육을 하며 느낀 점과 그들이 바라보는 장애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김영준 박사는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바로 꺼냈다. “우리나라는 지체장애 청각장애 등 부분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기에 포괄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장애인들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선 평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가가야 해요”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이효성 박사(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장).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이효성 박사(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장).


이효성 박사 또한 생각은 같았다. 이 박사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짚어냈다. “베리어프리(고령자나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의미)의 대표 주자로 교회가 돼야 해요, 교회는 그게 조금 늦지 않았나 싶어요, 장애인에 관한 관심은 증가하고 있으나 시청각장애인 분야는 여전히 뒤에요. 이들이 회복될 때 비로소 모두가 회복되는 교회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같은 시각 멀지 않은 다른 장소, 촉수화(상대방의 수어에 손을 접촉해 촉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를 배우기 위한 교육이 한창이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은 듣지 못하는 사람부터 보지 못하는 인물까지 각자 다양한 사연을 품고 이곳에 모였다. 정우식 박사(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 센터장)는 반갑게 인사를 꺼내며 많은 이야기를 풀었다.


“보통 시청각장애인들은 농인이거나 혹은 맹인으로 하나의 장애를 가지고 지내오시다가 질병이 발전되면서 시청각을 모두 잃는 경우가 있어요.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경우 보통은 30대, 40대 어간이 되기 시작하면 맹인에게는 귀가 안 들리고 농인에게는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떤 분이 나의 손을 잡고 당신의 손으로 어떤 손동작을 한다. 그의 손은 거칠고 두꺼웠지만 매우 따듯했다. 옆에 있던 통역사가 이야기 해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하는 거에요.”


“저는 손창환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농인이었습니다. 저시력이었고요. ··· 4학년 때쯤 아버지가 사주신 안경을 썼는데 계속 안경을 껴도 사람을 못 보고 안경이 부서지기 일쑤였어요, 계속 안경을 새로 사 맞추어도 계속 부서지니 아버지가 돈 낭비라고 불만을 많이 하셨죠” 그는 대화에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교육의 자리에 나온 처음 보는 청중들에게 거리낌 없이 풀어냈다.


학습지원센터 수료식 기념사진 현장, 이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학습지원센터 수료식 기념사진 현장, 이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수료식에 있었던 김지현 씨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오늘 점자 교육을 맡은 강사로 변신해 있었다. “문맹인 강사는 온표에 대해서 이해하는 방법을 쉽게 이야기하며 소통해 주는 것이 정말로 중요해요. 집에 숨어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아직도 문맹인 분들이 많아요. 집에 직접 방문해 인사드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 어려운 부분들을 해결해주고 상담도 해주고 점자를 배우고 싶다 하면 직접 방문해서 가르쳐주는 일도 하고 있어요. 집중하면 한 달 내에도 습득할 수 있어요”


이후 이어진 촉수화 실습시간, 서로가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공간은 매우 조용했지만, 이들의 손과 옷깃의 스침 소리를 통해 이 공간은 웃고 떠들며 쾌활한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교육 후 쉬는 시간, 손창환 간사와 대화를 나누러 가기 위해 같이 밖을 거닐었다. 비좁은 도로에서 통역가의 손에 서로를 의지해 같이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추운 세상과 달리 그들의 주위에는 따듯함이 가득해 보였다.


손창환 간사가 시청각장애인들이 가전제품 어떻게 사용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손창환 간사가 시청각장애인들이 가전제품 어떻게 사용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장애인 가족으로서 그만의 아픔을 조금씩 풀어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불평불만을 어머님께 아버님께 호소하고 반항했었던 기억이 많이 나요. 왜 나를 장애인으로 나았는지 나는 비장애인으로 살고 싶은데···아버지는 직장생활 방식 그대로 저를 양육했기에 힘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에 많이 후회도 해요.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많이 남습니다···내가 장애인이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소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고요. 아들놈이 아주 바쁘게 생활하기도 합니다. 아들과의 시간··· 그것이 없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특수교육실에서 한 아이가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와 또 자라날 아이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까.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우석 센터장이 이야기를 꺼낸다 “시청각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부여되기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들에게 꼭 교육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해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놓치면 후천적 발달장애인이 될 수 있는, 노출되기 가장 쉬운 아이들이에요”


촉수화 교육이 마무리된 현장, 집에 가려던 김지현 씨에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해맑게 웃으며 수어 통역사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 해주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아직도 이런 학습센터가 있는지도 몰라서 집에 계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직접 현장에 나가면 집에 있는 게 습관화돼 먹고 자는 것이 전부인 인생으로 변한 사람들도 많고, 거부하고 싫어하시는 분도 많아요. 그러나 스스로 노력하고 나가다 보면 분명 새로운 세계가 있거든요, 꼭 이 사실을 알려주세요, 답답함을 벗어버리고 부르심에 응답하고 앞으로 새롭게 세워나가는 세상에 우리가 우리와 세상에 외면당하는 이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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