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게 진짜 뉴스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1980년 5·18 당시 미션스쿨인 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다녔던 저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학교는 휴업에 들어갔고, 전화는 불통이었으며, 시내버스는 운행되지 않았고 모든 공공기관이 마비되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에게 집단발포는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를 경험한 세대로서 이번 소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가족의 안전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오지 않은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과거의 아픈 기억과 연결되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은 5·18광장으로 모이라’는 문자를 받고 그날 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1980년 광주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이 더 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과거와는 다릅니다. 시민들은 정치적 참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 계엄령 선포는 한국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적 신뢰 저하, 민주적 절차의 위기, 그리고 국제적 이미지 손상 등을 초래했습니다. 비상계엄 문건은 1980년 5·17 계엄포고령을 참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의 저항과 정치적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육, 정보 접근, 그리고 시민의식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회적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건강한 민주 사회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지, 민주주의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계엄령의 선포와 해지, 그리고 탄핵소추안의 발의 및 폐기 과정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적 긴장 속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항거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졌습니다.
국민들이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핫한 노래들을 개사하여 즐겁게 시위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정치에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원식 의장은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국민의 목소리를 강조하며, 탄핵이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결과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 있음을 언급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최대 6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980년 5·18의 경험은 저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제 삶의 방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5·18을 겪은 세대로서 민주, 평화, 인권, 정의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광주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며 지역 사회의 발전과 민주주의 수호에 힘썼습니다. 기독인으로서 광주광역시 북구의원과 광주광역시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매주 월요일마다 의원들과 기도 모임을 갖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근무하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기록관장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후세대가 알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큰 감사를 드립니다. 5·18 40주년 행사를 치른 후, 전일빌딩245 옥상에서 다가오는 50주년 희년을 기대하며 매주 월요일마다 나팔을 불고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기독인들에게 이를 알렸고, 해외에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5·18 기간이 오순절 기간이었고, 광주항쟁의 초기 국면에서 시민들의 순수한 사랑과 연대의 정신은 절대공동체로 불립니다. 이들은 서로를 돕고 지지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 체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된 가치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