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책이 풍겨주는 가을 향기”.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 낙엽 밟는 소리가 / 해 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 시몬, 너는 아느냐 / 낙엽 밟는 소리가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 소리와 /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 시몬, 너는 아느냐 /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가을길은 낙엽길과 같습니다. 단풍잎을 밟으며 가을길을 걸으면 뭔가 숙연해집니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붉고 길은 스산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말마따나 나뭇잎이 가을엽서가 됩니다.
우리는 그냥 낙엽을 밟는 게 아니라, 가을엽서를 밟는 것입니다. 낙엽은 정말 향기로운 가을향기를 물씬물씬 풍겨주죠. 그러나 우리는 가을낙엽이 주는 향기로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가을에는 책 읽기가 너무 좋은 계절입니다. 하늘이 푸르듯이 책도 푸르게 보이고 단풍이 아름답듯이 글씨가 어쩌면 그렇게 곱게 보이는지요.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책에서 나오는 냄새가 가을 향기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공원이나 기차 여행길에서 보면 책 읽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스마트폰에 집중을 합니다. 물론 저도 스마트폰 검색은 하죠. 그러나 스마트폰 검색 가지고는 다분히 정보만 얻을 수 있지 향기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알게 된 책을 구입해서 책장을 넘길 때야 책 향기를 느끼거든요.
저는 요즘 무척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일로 많이 고민하고 애태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있을 어떤 행사에 우호적 반대를 해야 할지 조금이라도 발을 담가야 할지, 어제와 오늘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반대를 하고 교계 몇몇 분들은 같이 하자고 주문을 합니다. 또 연합기관 통합 문제도 이렇다 할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심란할 때 저는 책을 읽습니다. 쉬운 책은 빨리 읽히고 어려운 책은 늦게 읽히지만, 쉬운 책이건 어려운 책이건 책을 읽는 그 순간은 얼마나 마음이 평온하고 코끝에 향기가 묻어나는지 모릅니다. 특히 이소동 집사(숙명여대 중문과교수)님이 쓰신 ‘공맹과 노장’이라는 책은 어려운 내용인데도 감탄사가 나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면 책상에 앉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독서 탐닉가가 되죠. 그 많은 독서의 힘이 설교의 내용을 더 탄탄하게 하고 견고하게 합니다. 물론 목회자가 힘들 때 기도해야죠. 그리고 성경을 읽어야죠. 그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입니다.
사실 일반 책을 읽는 것보다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는 얼마나 마음이 평안한지 모릅니다. 눈이 침침하도록 성경을 읽죠. 그 장을 읽다가 원근통시법적으로 그 장과 관련된 여러 편의 성경을 연구합니다.
또한 주석을 묵상하면 성경 본문이 제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흡수가 되고 용해가 되어 새로운 창작의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도 제가 읽는 책보다 읽지 않는 책이 훨씬 더 많고 성경도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끝없이 독서를 할 겁니다. 특별히 가을일수록 푸른 하늘과 책장을 넘기며 독서할 겁니다. 그리고 가을 길을 걸을 때 모든 잎새 하나하나가 가을엽서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길을 걸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종이 위에 가을 낙엽 향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이 좋은 계절에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양서를 읽으며 가을엽서를 이웃들에게 보내면 좋겠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