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사] 개혁주의 근거한 샬롬통일비전과 다음세대 요셉 리더십 < 기독AD < 기사본문



한반도 통일은 민족적 과제요 소망이다. 최근 북한 정부가 통일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이전에 지향하는 통일도 적화통일이다. 대한민국 내부에서도 통일에 대한 관점이 여러 가지다. 진보와 보수 성향의 정치적 입장도 견해차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헌법 조문 제4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우리 헌법정신을 살펴본다면 이러한 평화통일의 모델은 독일의 통일이었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통일 국가를 수립한 것이다. 그들이 이룬 통일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역할 중 두 가지를 기억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기도, 그리고 독일 리더십의 역할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몇 가지로 살펴보자면, 그것은 첫째, 개혁주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통일 이해, 둘째, 샬롬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 그리고 셋째, 다음세대 샬롬통일비전과 요셉 리더십 개발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권순웅 담임목사(주다산교회)
권순웅 담임목사(주다산교회)


첫째, 개혁주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통일이다.


1. 통일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즉, 통일을 통해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우리가 이루어야 할 통일은 화해와 연합의 복음적 평화통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레위기 26장 6절과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고 이를 준행할 때 그 땅에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셨던 것처럼, 통일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주의 세계관에서는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도 복음을 통한 화해와 연합을 말하는 것으로, 분단된 한반도 안에서 남북한이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2. 통일을 비롯하여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회복 사역이 나타나야 한다. 즉, 통일 이전과 이후로 하나님의 영역주권 아래에서 남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생명과 풍성함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이야말로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시키는 ‘하나님의 샬롬’인 것이다.


3. ‘샬롬’(שָׁלוֹם, shalom)은 히브리어로 ‘평화’, ‘안녕’, ‘완전함’, ‘번영’, ‘온전함’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다. 구약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 때나 사람들 간의 조화, 그리고 보편적이거나 총체적인 번영과 평안을 의미할 때도 사용된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8~19)


이처럼 ‘샬롬’이 화해와 연합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를 주도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칼빈 주석 중에서 ‘평화’에 관해 살펴보면 이사야 9장의 말씀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여기서 칼빈이 이해하는 평화란, ‘통치, 나라’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님이 바로 평화 그 자체이며 화해와 평강의 통치자가 되신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칼빈은 ‘평화’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질 때 진정한 평화가 도래한다고 했다. 즉, 복음적 평화통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정의와 평화가 구현되고 분열된 국가나 공동체가 화해하고 통합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민족의 통합을 이루는데 기여하며, 공공의 선과 사랑의 실천을 강조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 전체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개인과 공동체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통일을 위한 중요한 원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가 하나님 은혜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의 열매로 깨닫고, 복음을 통한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샬롬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이다.


1. 기도 공동체로서의 사명이다.


독일 통일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독일 통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독일은 사실 전범국가이다. 미국,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유럽 주변국은 모두 전쟁 대상국이었고 피해국이었다. 그들이 협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독일 통일의 결정적 역할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스 교회(Nikolaikirche)의 기도 모임이 발화점이 되었다. 나중에 100만 베를린 통일 집회의 불씨가 되었다. 그 기도회를 인도했던 목사님을 직접 만나보았다. 처음에는 적은 수가 모인 작은 기도 모임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기도회를 인도했던 목사님도 만났다. 그들의 기도의 특징은 독일 통일만 놓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국의 평화를 위해서까지도 기도했다는 것이다. 정말 EU가 결성되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Ronald Wilson Reagan, 1911~2004)과 소련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ёв, 1931~2022)가 돕는 천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 공동체만큼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국의 리즈 하월즈(1879~1950)는 1936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학생들에게 중보기도의 용사가 될 것을 강력하게 도전했다. “이 전쟁의 승패의 책임은 바로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결코 여러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가 평화를 되찾게 될 때까지, 여러분도 결코 평화를 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영국침공을 앞두고 아프리카로 방향을 돌려버렸던 기적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 통일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했던 것은 독일의 리더십이었다. 독일 총리로는 건국의 주역이었던 아데나워(1876~1967), 에르하르트(1897~1977)가 있었다. 3대 커징어(1904~1988) 후에 4대 가장 중요한 업적을 가진 사람은 빌리 브란트 총리(1913~1992)였다. 동방 정착을 통해 독일 통일의 기초를 놓았다. 6대 헬무트 콜 총리(1930~2017)가 통일에 대해 전광석화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했다. 후일 동독 출신 여성 메르켈 총리(1954~)도 콜 총리가 스카우트한 것이다. 슈뢰더 총리(1944~)가 7대를 했고, 8대 메르켈이 등장하여 통일 독일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특히 메르켈은 목사님의 딸로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셋째, 통일 비전과 요셉 리더십 개발이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리더십이 바르게 세워지는 일이다. 금번에 샬롬부흥 통일비전 청년&청소년 리더십 캠프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는 청년·청소년이 기도의 사람들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바로 한국교회와 다음세대의 가장 큰 비전이요 사명이다. 전세계에서 Next War로 카운터하고 있는 한반도가 만일 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민족은 공멸할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다음세대는 역사의 주인공이다.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 심각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는 곳이 한반도요 대한민국이다. 다음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그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개인주의에만 머물도록 방치하지 않고, 역사의 비전과 리더십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5가지 꼭짓점으로 훈련코자 한다.


1. 첫째 꼭짓점은 비전이다.


성경적 관점으로 통일에 대한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당위성을 통해 비전을 보고 품는 자들로 세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크리스천 청년·청소년들로서 소아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이 주신 대의를 보고 품는 비저너리로 세우는 것이다. 성경에서 주시는 환상, 예언, 꿈, 그 비전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는가. 


2. 둘째 꼭짓점은 큰 그릇이다.


요셉은 자신의 원수와 같았던 형들을 모두 품었고 그 자식들마저도 양육했다. 이를 위해 성경적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 마음을 넓히기 위해서는 성령의 체험과 용서와 화해의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일 통일을 보면 브란트 같은 총리의 역사적 사회운동 등은 독일 통일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의 다음세대도 샬롬의 사람들로 큰 그릇으로 빚어져야 한다.


3. 셋째 꼭짓점은 깨끗한 그릇이다.


요셉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청소년 때부터 구별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유혹을 극복한 경건한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의 다음세대를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유혹이다.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토대에는 경건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으로 깨끗함을 지켜야 한다.


4. 넷째 꼭짓점은 지혜이다.


요셉은 지혜의 은사를 받았다. 문제에 대한 답을 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애굽을 살렸다.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을 살렸다. 미래 이스라엘을 위해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유언까지 했다. 그의 지혜는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열방과 민족, 그리고 자신의 가정에 대해 답을 제시했다. 자신의 인생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임을 경험했다.


5. 다섯째 꼭짓점은 훈련이다.


시편 105편 18~1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요셉을 훈련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말씀이 그에게 응할 때까지 훈련하게 하셨다. 청년·청소년들이 리더십으로 세워지기까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훈련, 말씀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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