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에 홍해 개입 명분 안 주려
응징 않다, 12월 말 구조 요청하자
헬기로 예멘 반군 고속단정 격침해
홍해, 한국과 전 세계 교역 중심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면한 지부티 해안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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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투데이에 ‘비대면 성지순례’를 연재 중이신 권주혁 박사님께서 새해를 맞아 정기 기고 대신 국제정세에 대한 특집 기고를 보내 주셨습니다. ‘비대면 성지순례’는 다음 주 1회 게재됐다 잠시 휴식 후 2월 마지막 주부터 다시 계속됩니다. -편집자 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바다 이름에 색(色)이 붙은 바다가 몇 개 있다. 아프리카 동북부와 아라비아 반도로 둘러싸인 바다가 홍해(紅海·Red Sea)이고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바다에는 흑해(黑海·Black Sea), 그리고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있는 서해 바다에는 황해(黃海·Yellow Sea)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바다라면 모두 푸른색일 텐데, 왜 색깔을 넣은 이름을 붙였는가?
필자는 남북 길이 2,250km, 동서 평균 폭 280km, 면적 45만㎢(남한의 약 4.5배)에 이르는 홍해 위를 비행기를 타고 서너 번 남북, 동서로 통과해 봤고, 이집트 시나이 반도 서쪽 바다, 그리고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로 둘러싸인 아카바만(灣)에서 수영을 했으며, 홍해 남단 지부티 해안에 서서 보았지만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만 보았지, 붉은 색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홍해’의 경우 원래 바다 색이 일시적으로 붉게 보이는 곳이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즉 홍해 일부 특정 지역에 트리코데스미움(Trichodesmium)이라는 해양 세균이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바다 톱밥(Sea Sawdust)이라는 별명이 있는 트리코데스미움이 대규모 군집으로 발생할 경우, 적조(赤潮)를 만들어 낸다. 즉 홍해는 이러한 적조 발생률이 높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홍해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도 등장한다.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오늘날 이스라엘 지역)으로 향하여 가던 중,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기적으로 갈라지자, 이를 건너 오늘날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도착하고, 결국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홍해는 세계에서 맑기로 유명하고 아름다운 바다이므로, 맑은 홍해 속에 생육하고 있는 산호초와 수많은 어종 등 많은 해양 동식물을 보려고 전 세계에서 다이버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와 함께 홍해는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바다이므로, 고대부터 교역 통로로 중요하게 사용됐다. 고대 이집트는 홍해를 이용해 오늘날의 소말리아까지 배를 보내 동부 아프리카 지역과도 교역을 했고, 이스라엘도 솔로몬 왕 시대에 홍해를 이용해 멀리 있는 나라들과 교역을 했다.
즉 솔로몬 왕 시대 이스라엘 남쪽 항구를 떠난 배들이 ‘오빌’에서 금을 가져오는 등 홍해 바다를 통해 교역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열왕기상 9장 26-28절). 오빌의 위치에 대해서는 성경에 구체적 설명이 없지만, 일부 학자들은 인도, 아라비아반도 또는 동부 아프리카 등고 여러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오빌이 오늘날 소말리아 지역에 위치했다고 판단한다. 이를 설명하려면 너무 길므로 생략한다. 여하튼 홍해는 구약 시대부터 해상 교역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였다.
▲홍해에서 가장 폭이 좁은 바브엘만데브 해협 상공. 아래는 지부티, 폭 27km 해협 건너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해안이 보인다(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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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대부터 홍해를 통해 시작된 교역은 중세에도 활발하게 계속됐다. 그러다 홍해의 높은 전략적 가치를 인식한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시대 유럽 열강들이 홍해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1869년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개통시키자, 홍해 동쪽 인도양까지 아시아와 유럽의 교역량이 급작스럽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홍해가 세계 물류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점하게 되자, 자연히 홍해 이권을 둘러싸고 주변국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게 됐다. 예를 들면 1956년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제2차 중동전쟁은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일어난 분쟁이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즉시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에서 탈취했고,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에 진입했다.
‘6일 전쟁’으로 유명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가 홍해 북부 티란 해협을 봉쇄해 이스라엘의 숨통을 막으려 하자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현대 들어 홍해를 둘러싼 지역 여러 나라가 독립하면서, 홍해 남쪽(아덴만)에서 홍해로 들어가고 나오는 선박들에 테러 행위를 하거나 나포하는 해적 행위가 빈번하고 있다.
소말리아인들이 주로 하는 해적 행위와 별개로,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 후티 반군(反軍)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최근 홍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자, 후티 반군은 홍해를 지나가는 선박들에 대해 적대행위 내지 테러 행위를 하고 있다.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아시아-유럽 교역 물량의 40%, 세계 해상 물류(무역량)의 12%가 통과함으로써 유럽과 중동을 연결하는 해상 운송로 핵심 역할을 하는 홍해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홍해 연안에 해군기지를 갖고 있다.
또 이 지역의 안정을 중히 여기는 국제사회는 이 지역에 해군력을 투입하는 한편, 홍해 남단 소국(小國) 지부티에 5개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이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함정을 파견하고 있다.
홍해 북부 수에즈 운하와 남부 지부티와 예멘 사이 바브엘만데브(Bab el Mandeb) 해협은 동남아시아 말라카 해협과 함께 세계 최대 해상수송로 가운데 하나다.
홍해 남단 아덴만은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과 아라비아해에서 만나, 홍해는 거대한 유조선이 주로 운항하는 호르무즈 해협과 함께 세계 원유시장 안정 필수 지역이다.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돼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수출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실은 유조선의 대부분도 홍해를 통해 운항하고 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이후 항상 군사 마찰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으며 가끔씩 문제를 발생시킨 이 지역 최근 상황은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일부 세계적 해운사들 선박이 후티 반군의 나포와 공격을 피하려 홍해를 통과하는 대신 비싼 비용과 긴 항해 기간에도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왕래하는 장거리 항해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홍해에 군사기지는 없으나, 청해부대 소속 대형 군함이 파견돼 이 해역을 항해하는 우리나라 선박(화물선, 어선 등)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이 홍해는 과거에는 비교적 조용해 세계의 언론이나 뉴스에 올라오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세계 뉴스에 주요 공급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홍해 문제는 홍해에 면한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국가들의 이권 문제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이란, 러시아, 미국, 이스라엘까지 개입하는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홍해 문제로 야기되는 세계의 해운과 물류 문제가 지구촌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2023년 10월 초 이후 하마스를 지원하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親)이란 민병대 기지를 공격했으나, 예멘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에게는 홍해 문제에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으려 후티 반군의 도발 행동에 대해 응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12월 말 후티 반군 공격을 받은 대형 컨네이너선이 미군에 구조 요청을 하자, 인근 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항공모함에서 헬기를 발진시켜 후티 반군의 고속단정들을 격침했다. 이란은 이것을 노렸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 물류에 중요한 홍해를 안정화시키려 39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해군 연합체인 연합해군사령부(CMF) 소속 해군 함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범선들이 돛을 활짝 펼치고 미풍을 받으면서 노를 저어 잔잔한 홍해를 따라 항해했다. 그러나 오늘날 홍해는 역사상 이렇게 많은 나라의 현대식 군함들이 홍해 해상 충돌에 개입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더 이상 평화로운 바다가 아니다.
홍해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우리도 오래 전부터 청해부대가 대형 군함을 파견하고 있을 정도로 교역에 중요한 곳이다. 2024년 새해를 맞아, 홍해의 시끄러운 상황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권주혁
국제정치학 박사
육군사관학교 역사포럼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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