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아동 돌보는 일, 은혜요 기쁨입니다”
유기 위험에 놓인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주사랑공동체와 새가나안교회가 설립한 ‘베이비박스’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2044명의 아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14년이 지난 올해, 유기된 아이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식으로 받아들인 부모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현장의 이야기를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유기 아동과 이와 관련된 제도적 시사점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새가나안교회(이기동 목사)의 베이비박스 사무실, 아기 침대들이 비어있는 이곳은 적막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김은자 권사와 국은경 집사는 고요함 속에서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든 아기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한 아이가 우리의 품을 거쳐, 임시보호소로 떠났어요. 이 소중한 한목숨이 보전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2015년, 새가나안교회와 성도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당시에는 36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를 거칠 정도로 교회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지역 일시보호소들이 만실이 될 만큼 도움이 절실하던 시기, 성도들은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며 헌신했다.
인터뷰를 위해 모인 자리, 한 아이를 임시보호소에 보내며 적은 공문이 눈에 띄었다.
“잠투정을 합니다. 공갈 젖꼭지를 물려주세요. 바로 눕히면 놀라요, 잠들기 3시간 전에 분유를 먹이면 잠을 잘 자요. 이쁘고 건강하게 돌보아 주세요. 봉사자 모두가 이 아이가 생명을 살리는 귀한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사랑공동체가 발표한 자료에서, 2019년 237명의 유기 아동 중 170명이 베이비박스의 손을 거쳐 갔다. 주사랑공동체(이종락 목사)와 새가나안교회는 이런 유기 아동을 위해 각각 2009년, 2014년도부터 베이비박스 사역을 감당하며 현재까지 총 2044명의 아이들을 기관으로 보냈거나, 성도들 스스로가 입양을 자처하는 등 다양한 모양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애들을 돌보며 매일 밤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강한 마음을 부어주셨어요. 아기방에 눈을 말똥말똥 뜨는 제일 여리고 힘들어 보이는 아이와 서로 눈을 마주쳤어요. 사랑하는 내 아들이었어요”
김옥녀 권사는 김제윤(가명) 군을 입양한 25년 차 주부 베테랑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함을 느낀다는 그녀는 자신의 간증과 더불어 은혜로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기쁨과 행복을 느껴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고 하나님의 기쁨이라 믿어요”
김영자 권사는 베이비박스로 만나게 된 채아(가명) 양을 키우기 위해 당시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며 아이를 위탁하기 위해 1년간 서류 준비로 시청을 드나들었다. 채아 양은 원래 다른 부모에게 입양될 예정이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유는 몇 년 뒤 찾으러 오겠다는 친부모의 쪽지. 이대로면 채아 양은 보육원으로 갈 것이 자명했다.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연으로 이어진 이 아이를 김 권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 권사는 당시 채아 양의 입양을 위해 의무적으로 거쳐야 했던 일시보호소의 날을 회상했다.
“일시보호소는 사회복지사들이 교대로 근무하다 보니 아이 하나하나를 집중적으로 돌볼 수 없어요. 제 아이를 데려오는 길, 거기에서 충혈된 채 울지도 못하고 힘 없이 풀려있던 그 아이의 눈이 아직도 선명해요”
이런 엄마들의 선한 마음이 새가나안교회에도 물들었던 걸까. 이들과 자녀들은 사회의 시선에 주눅들지 않았고, 교회와 성도들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예수의 품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냈다.
“우리 막내딸(채아 양)은 전도를 엄청나게 잘해요. 친구 엄마들이 교회 보내는 걸 꺼릴 때 우리 막내가 친구와 엄마들이랑 잘 지내서 교회에 나오게 하는 등 애를 많이 써요. 우리 채아의 선한 영향력이 주님을 통해 드러낼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현장에서 유기 아동의 현실을 직면하며 느낀 이들의 이야기는 베이비박스는 제도적 기반과 시설, 인력 등이 충분히 마련되기 전까지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채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정부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최근까지도 경찰로부터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 김은자 권사는 답답할 뿐이다. 유기 아동 2차 전수조사 시행으로 인해 그녀는 시시때때로 경찰의 전화를 받기 일쑤다.
“정부에서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정부는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며 미인가시설과 민간단체에 대해 적극 관리와 대처가 없어요. 이슈가 있을 때만 이런 조사를 하기 급급해요”
김영자 권사는 당시 채아 양의 후견인 자격을 얻기 위해 애썼던 날들을 회상했다.
“채아는 위탁아동으로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심지어는 판례를 새롭게 만들어 가며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여권 하나 만들기도 엄청 까다로워요. 시청과 시민단체, 외교부까지 다양한 곳에서 질의를 거쳐 가며 겨우 만들었거든요, 엄마, 아빠가 이렇게 앞에서 감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채아가 세상에 부딪혀야 할 때가 걱정이에요. 저희가 이 정도인데 시설 아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실제로 아직 정부의 유기 아동에 대한 제대로 된 현황 파악과 더불어 유기 아동과 보호 아동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은 미흡하다. 지난 11월 27일 아동권리보장원(원장:정익중)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아동권리보장원 장화정 본부장은 “보호 대상 아동과 관련해서 한 사람이 아이를 사례 관리하는 숫자는 30명 정도다. 또한 지자체 전담 요원도 715명이 배치돼야 하는데 500명 중반이다”라며 전담 인력 고용 안정화와 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보호출산제’에 대한 걱정도 존재한다. 제도의 신설로 인해 익명 출산을 보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기존과는 달리 산부인과에서 출산 신고의 책임이 부과돼 무조건 신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것이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임산부들에게 대한 정보 요구로 오히려 부담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국은경 집사의 걱정 또한 이와 같다. “이전에는 산부인과에서 출산은 하고 여기에 놓고 갔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익명 보장이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정보를 내달라는 것 또한 이들에겐 부담인 거죠.”
지난 9월 6일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 유기 실태’ 발표회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제기됐다. 국민의 힘 서정숙 의원은 “이 제도는 위기 임산부들이 신분을 숨기고 아이를 낳기만 하고 키우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되면 안 된다. 위기 임산부 여성들의 신체적 사회환경적인 구체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발언했다.
이렇게 정부와 지자체도 유기 아동들에 대한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열악한 환경 개선은 멀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베이비박스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꿔줄 수 있는 위기임산부지원센터의 역할을 자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베이비박스는 정부에 제대로 된 인정과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그저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이비박스 아기방을 나가는 길, 김은자 권사의 마지막 대화는 베이비박스의 가치를 알기에 충분했다.
“저는 이 사역을 하면서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자랑스러워요. 유기의 위험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저녁을 맞이하며 하나둘 불이 꺼지는 동네,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을 밝히며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