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거주 입양인들 “딥 조이” 선물 보내… 30명서 시작해 150명으로 늘어
산타키즈들 “나도 베풀고 싶어요”
자원봉사에 용돈 모아 기부 동참
“겨울마다 날씨는 추워도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엄마 혼자 키워 제대로 못 배웠을 거란 말을 들었을 때도 산타 삼촌 이모를 생각하며 꾹 참았어요.”
올해 수도권 대학 게임학부에 입학한 김우재 군(19)은 며칠 전 서울 성북구 집에 도착한 소포를 보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는 걸 실감했다. 배송자가 한국미혼모가족협회인 소포에는 김 군이 선물로 받길 바랐던 운동복 바지가 담겨 있었다. 김 군은 “얼굴도 모르는 분이 해외에서 매년 선물을 보내준 게 벌써 11년째”라며 “엄마가 미혼모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때 책가방을 받고 행복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 산타가 된 해외 입양인들
미혼모협회를 통해 김 군 같은 미혼모가정 아이들에게 매년 선물을 보내는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다. 미혼모였을 자신의 친모를 떠올리며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한다는 취지에서 2009년 미국에 사는 섀넌 헤이트 씨(41·한국명 정두나)가 ‘미혼모 가정 아이들에게 산타 되기’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해 15년째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 사이에서 ‘리더’로 불리는 헤이트 씨는 18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친모가 미혼모였는데 저를 혼자 힘들게 키우다 4세 때 입양을 보냈다고 들었다”며 “사회적 편견도 있겠지만 우리 입양아들만큼은 미혼모 가정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헤이트 씨는 취지에 동참하는 입양인 30여 명을 모은 후 미혼모협회를 통해 선물받기를 원하는 아동 30여 명에게 선물을 보냈다. 지금은 입양인 150여 명이 300여 명에게 선물을 보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미혼모협회는 매년 각 가정에 희망하는 선물을 조사하는데 “추운 날씨에 아이에게 코트 한 벌, 부츠 한 켤레 못 사줘 마음이 아프다”는 등의 사연이 들어온다고 한다.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앨런 메이저스 씨(64)는 9년째 프로젝트에 동참해 매년 50여 명을 후원하고 있다. 메이저스 씨는 “미혼모 가정을 돕지 않으면 저처럼 입양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산타가 되기로 했다”며 “매일 투쟁 같은 일상을 보내는 미혼모 가정에 깊은 기쁨(Deep Joy) 하나쯤 주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기부·봉사로 사회에 돌려주는 산타 키즈들
올해 원하던 운동복 바지를 받았다. 김 군은 “매년 선물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왼쪽 사진부터). 윤
양·김 군 제공
이제 연례 행사로 자리 잡은 프로젝트를 통해 김 군처럼 성장 과정 내내 선물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산타의 선물을 받고 자란 아이 중 상당수는 ‘나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고 한다.
김 군의 어머니도 “너도 성공하면 미혼모 자녀들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 돼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김 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게임 사운드 엔지니어가 돼 미혼모 자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미혼모협회 송년회 때 음향감독 자원봉사를 하는 등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윤라엘 양(15)도 9년째 선물을 받는 ‘산타 키즈’다. 올해는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의자를 선물로 받았다. 윤 양은 ‘계속 받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머니(43)와 함께 각종 기부에도 참여하고 있다. 윤 양은 “최근에는 전쟁이 장기화된 우크라이나에 용돈 5만 원을 기부했다”며 “좋아하는 마라탕을 6, 7번 먹을 금액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군도 윤 양도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선물 구입과 배송을 주관하는 미혼모협회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후원자와 후원 아동에게 서로의 신원을 알려주지 않는다. 후원에 대해 감사 편지를 쓰라고 하는 일도 없다. 이에 대해 메이저스 씨는 “누가 제 도움을 받는지 몰라도 상관없다. 형편이 되는 한 그림자 속에서 계속 도와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