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꾸중하시던 장로님들의 당시 연세에 어느새 저도 가까워졌네요. 지금 젊은이들은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저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합니다.”
내년이면 딱 60세가 되는 전상영 장로는 이렇게 30여 년 전을 회상하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군종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20대 후반의 청년은 군대시절의 경험을 살려, 음악에 재능 있는 교회 안의 또래와 후배들을 규합한 찬양팀을 결성했다.
이름 하여 익산 고현교회(박인기 목사) 에벤에셀찬양선교단. 12명의 창단 멤버들은 틈만 나면 모여서 노래하고 연주하며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열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처음에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어른들도 손수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악기와 장비들까지 구입해 헌신하는 단원들의 진심에 차츰 공감하고, 열렬한 응원자가 되어줬다.
마침 그 무렵 부임한 최창훈 원로목사는 선교단 사역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찬양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뿐 아니라 국내 농어촌오지나 해외 선교지로 단기선교를 떠나도록 몸소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특히 아무런 경험도, 정보도 없이 처음 도전한 1994년 필리핀 단기선교 때의 기억을 전상영 장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필리핀 현지인들과 함께 찬양하고 싶어 영어와 타갈로그어까지 열심히 연습하며 준비했는데요. 막상 떠나려고 보니 전체 경비가 700만원 정도 부족해, 행사 진행이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많이 고민하다가 제가 몇 년 동안 애써 부은 적금을 깨기로 했죠. 놀랍게도 은행에서 해약하고 받은 수령액이 딱 700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받은 은혜들이 너무 컸다. 그래서 멤버들은 다음 해, 그 다음 해에도 선교지로 떠나는 짐을 꾸렸다. 어느 해에는 단원들과 선교사가 허허벌판에 함께 서서 ‘이 자리에 예배당이 세워지고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찬양하는 모습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비전을 나누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찾아간 그 장소에서 정말 꿈이 성취된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찬양사역과 함께 펼친 의료사역을 통해 중풍병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하는가 하면, 전도한 현지인들을 훗날 목회자나 교회 중직자로 다시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전설 같은 스토리들이 쌓여가면서 점점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숫자가 늘었다. 고현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의 장차 목표가 에벤에셀찬양단 선배들처럼 단기선교 기간 착용하는 파란색 유니폼을 꼭 입어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언제부턴가 들려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실제로 그 후배들이 팀 일원이 돼 그 유니폼 속에서 땀범벅이 돼 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올해로 에벤에셀찬양단의 농어촌전도여행은 32차, 해외단기선교는 28차를 맞이했다. 그 사이 찬양단을 거쳐간 멤버들은 100명이 훌쩍 넘는다. 놀라운 것은 원년 멤버 12명 중 지금도 절반에 해당하는 6명이 지금도 리더로, 싱어로 찬양단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상영 장로의 경우 같은 원년멤버였던 조덕영 권사와 부부의 연을 맺어, 찬주 찬미 두 자녀를 슬하에 두었는데 지금은 네 식구 모두가 찬양단에서 동역한다. 이런 식으로 가족 단위 참여 사례가 적지 않은 게 에벤에셀찬양단의 특징이다.
지금은 각자 흩어져 지내면서도 해외선교 같은 큰 사역이 펼쳐질 때면 언제라도 달려와 힘을 보태는 것이 단원들의 끈끈한 의리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인 올해 10월 29일 열린 에벤에셀찬양단 31주년 찬양집회에는 무려 66명의 단원이 참여해, 감격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지금 청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전상영 장로의 궁금증은 해결됐을까. 애당초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에벤에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현교회의 영적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정예부대이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한 팀을 이룬 전우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