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이기며 전도와 사랑 꿈꾸는 평택제일교회 < 목회 < 기사본문



평택제일교회는 평택 지역 장로교회들의 어머니와 같은 교회다. 1956년 농촌 소도시였던 평택에서 처음 장로교회로 설립해 지역에 여러 장로교회들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목회상담 전문가인 김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가정행복학교를 비롯해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 양육 및 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평택제일교회는 평택 지역 장로교회들의 어머니와 같은 교회다. 1956년 농촌 소도시였던 평택에서 처음 장로교회로 설립해 지역에 여러 장로교회들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목회상담 전문가인 김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가정행복학교를 비롯해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 양육 및 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평택제일교회는 경기도 평택 지역 장로교회들의 모태라고 여겨진다. 공식적으로 평택제일교회에서 ‘분립’해 설립한 교회가 십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안타깝게 모두 은혜로운 분립은 아니었다. 68년 교회 역사 속에 13명의 목회자가 시무했다는 것만 봐도 얼마나 부침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김태식 목사는 2018년 4월 평택제일교회에 13번째 담임으로 부임했다. 김 목사는 “오랫동안 교회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기도하며 선교지로 간다는 결심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교회의 설립 이래 68년 역사를 설명하며 “우리 성도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정말 좋은 분들이다. 우리 성도들을 위해 목회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태식 목사는 갈등으로 마음과 영혼이 지친 성도들을 보듬으며, 다시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목양했다.
2018년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태식 목사는 갈등으로 마음과 영혼이 지친 성도들을 보듬으며, 다시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목양했다.


평택제일교회는 1956년 6월 설립했다. 6·25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와 평택에 자리 잡은 북한 성도들이 중심이었다. 당시 평택 지역은 장로교회가 없었다. 교파가 다른 교회에 출석하던 장로교 성도 30여 명이 평택 지역에 세운 첫 번째 장로교회였다.


교회 역사를 보면 성도들의 헌신은 놀랍다. 교회설립 이듬해인 1957년에 부지를 매입해서 첫 번째 예배당을 건축했다. 1961년에도 약 2800㎡(840평)의 부지를 매입해 2차 예배당을 건립한 후 1975년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해 입당했다. 또한 1996년 용이동에 새로운 예배당 부지 3800㎡를 마련하고 2012년 용이동 예배당을 건축했다. 현재도 비전동 예배당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어서 비전동 예배당 리모델링과 교육관 건축까지 할 정도로 성도들의 교회 사랑과 헌신은 뜨거웠다.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평택제일교회는 1990년대 새신자 3000명 초청을 목표로 총동원주일을 개최하고, 태국에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로 부흥했다. 김종옥 권사는 1973년부터 평택제일교회에 출석해 50년 동안 올곧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김 권사는 “아파트 한 채가 3000만원도 안될 때 우리 가정과 성도들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그(3000만원) 이상 헌금을 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가족 같았고 교회에 오면 기쁘고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평택의 모 교회로서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재웅 최명희 선교사를 파송하고 해외단기선교(사진 아래) 펼쳤다.
무엇보다 평택의 모 교회로서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재웅 최명희 선교사를 파송하고 해외단기선교(사진 아래) 펼쳤다.


하지만 평택제일교회는 90년대 후반부터 2008년과 2018년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강강수 장로는 2020년 장립받고 지난 6월에 은퇴했다. 1976년 평택제일교회에 출석해 평생 교회와 함께 한 강 장로는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도 교회를 섬기기 위한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일도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단련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에 그 뜻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44년째 출석하는 서애란 권사는 “교회를 떠날 마음은 없었다. 우리 교회가 화합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예배하고 교육하고 선교와 구제 사역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춘화 집사는 평택제일교회에 등록해 9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임 집사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내가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태식 목사가 부임한 후 교회의 아픔을 끊어내고 좋은 교회로 이끌어갈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태식 목사는 “지금까지 공부하고 부교역자로 준비한 모든 것들이 평택제일교회 목회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총신신대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상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리전트대학에서 리더십으로 목회학박사(D.Min) 학위를, 총신대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재정은 풍족하지만 관계가 깨진 가정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 가정들을 회복하는 상담사역을 정말 열심히 했다. 구리성광교회에 이어 안산동산교회에서도 상담과 전도와 리더십에 탁월한 목회자였다.




김태식 목사는 “평택제일교회에 부임하면서 목회비전과 목회철학을 분명히 밝혔다. 목회의 핵심은 영성이 있는 성도,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사회”라며, “기본은 성도들이 영성을 갖는 것이다. 그런 성도가 행복한 가정을 이뤄가고 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섬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목사는 교회에 부임한 후 예배대행진, 말씀대행진, 기도대행진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많은 성도들이 주일 낮예배만 드리고, 새벽예배 주일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 다른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예배대행진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의 감격을 누리도록 애썼다. 이어 말씀대행진으로 성경통독을 진행했다. 성도들은 정말 죽어라 성경을 읽었다. 성경통독을 5번 한 김종옥 권사를 비롯해 많은 성도들이 말씀에 매달렸다. 기도대행진을 하면서 뜨거운 기도의 불이 일어날 때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


이제 70주년을 앞둔 평택제일교회 성도들은 비전동 예배당에서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지역에 흘려보내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제 70주년을 앞둔 평택제일교회 성도들은 비전동 예배당에서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지역에 흘려보내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김태식 목사는 “누구보다 목회자인 내가 말씀과 기도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낙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목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주일과 수요예배 설교는 물론 새벽예배까지 모든 설교를 한다고 말했다. 새벽에 일어나 예배를 인도하고 기도의 강단을 쌓은 후, 오전에 말씀 연구와 설교 준비를 하고 있다.


김태식 목사는 하나님께서 평택제일교회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있다. 어려움 속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회복할 것을 믿는다.


“교회가 안정된다면, 세 가지 사역을 하고 싶다. 첫 번째는 성도들을 어루만지는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일구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세 번째는 지역에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역을 하고 싶다. 이 사역들로 우리 교회 이름처럼 평택에서 제일 좋은 교회, 제일 많이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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