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회 총회, ‘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채택해야
성폭행 문제 처리 못한 총회
우리 총회에서 목회자 성폭행, 교회 성추행과 관련한 이슈는 희소하다. 단골 헌의안 주제도 아니다. 총회에서 성폭행 이슈가 다뤄진 것은 8년 전, 전병욱 목사 문제로 촉발된 것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전 목사의 성폭행 사건이 총회 공식 석상에 오른 것은 제100회 총회(총회장:박무용 목사·2015)였다. ‘전병욱 목사 여자 성도 성추행 사건’이 해 노회인 평양노회에서 재판국 해산으로 처리되지 않자, 총회 재판국 위탁판결을 긴급동의안으로 올린 사안이었다. 당시 총회 결의는 “평양노회 재판국에서 철저히 조사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하고 범죄사실이 확실한 경우 목사 면직하고 재판기록 전 과정을 2015년 성탄전야까지 기독신문에 요약 게재, 만약 해 노회가 어길 시 무조건 5년간 노회의 총회총대권 박탈하기로 가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년 후 제101회 총회(총회장:김선규 목사)에서는 이 같은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않은 평양노회를 제재하기는커녕, 관련 이의 제기를 모두 기각했다. 평양노회의 솜방망이 처벌을 총회가 눈감아 준 격이다.
이처럼 총회는 총회 석상에서 처음으로 불거진 목회자 성폭행 문제를 명확히 처리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입게 됐다. 이후 총회에서 교회 성폭행 문제가 재차 언급된 것은 6년 후인 제107회 총회였다. 유례없이 두 개의 헌의안이 올라왔다. 총회 제도 개선 및 도입 관련 헌의안으로 서전주노회(노회장:김환수 목사)와 전북노회(노회장:이영익 목사)가 ‘성폭력 대응 매뉴얼 수립’을 헌의해 총회 차원의 성폭행 대응을 주문했다. 두 개의 헌의안은 교회생태계대응위원회(현 대사회문제대응위원회)에 이관됐고 두 달 후 위원장이 선출돼 매뉴얼 제작에 착수했다.
첫 성폭력 대응 매뉴얼 나왔지만
제법 빠른 행보였다. 대사회문제대응위원회(위원장:정중헌 목사·이하 대응위)는 두 달이 채 안 돼 <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안)을 만들었다. 매뉴얼을 보유해 시행 중인 주요 교단들의 자료를 참고해 우리 교단에 필요한 내용들로 엄선했다. 올해 1월, 대응위는 총회 임원회에 매뉴얼을 전달했다. 헌의안 가결 후 약 3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총회임원회의 반응은 대응위의 예상을 빗나갔다. “신학적 측면에 아쉬운 부분이 있어 보완을 요청한다.” 개혁신학적으로 매뉴얼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적 사항은 없었다. 대응위는 사실상 거절이라고 판단했다.
정중헌 대응위원장은 “제107회 총회가 상설위원회에 위임한 사항을 총회임원회가 거절할 수 없다”며 “매뉴얼을 총회임원회에 보낸 것은 채택 여부가 아니라 보완해야 할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헌의안이 요구하는 것이 성폭력 윤리강령의 마련이라면 신학적으로 조심해야 하나 예방과 대응에 관한 지침 및 매뉴얼인 만큼 신학적으로 깊이 따질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대응위는 총회 임원회가 채택 불가 결정을 내린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이에 총회임원회에 연석회의를 공식 요청했다.
소통하지 않는 총회임원회
대응위는 권순웅 총회장이 취임 초기부터 107회기에 역점을 둔 ‘샬롬·부흥 운동’이 교회와 다음세대를 살리고 나아가 대사회운동에까지 나설 방침임을 밝혔기에, 총회임원회가 매뉴얼 수용을 바로 결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의 간극은 3월 14일, 권순웅 총회장이 〈샬롬부흥 클린개혁 성명서〉를 전격 발표한 후에도 계속됐다.
권 총회장은 금권 선거 근절과 총회 본부의 원칙 운영에 이어 교회 내 성범죄 예방과 대안의 긴박성과 중요성을 성명을 통해 밝혔다. “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에 이르기까지 성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경건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성범죄에 연루된 총회 구성원은 근신하여 회개하도록 하고 총회 활동을 불허한다.”
대응위는 총회장이 교회 성범죄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 피력한 만큼 성폭력 예방 매뉴얼에 대한 구체적인 소통이나 행보가 있을 것으로 예단했다. 매뉴얼이 총회장의 샬롬 클린 개혁 정신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안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다른 소통 없이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연석회의를 요청하는 대응위의 공문이 3차까지 발송된 후에야 총회임원회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도 총회 보고한다”
총회임원회와 대응위 간 공전 양상이 계속되자, 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채택의 회기 내 성사가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대응위의 보다 적극적인 행보에 아쉬움이 있기도 하지만 보다 두드러진 것은 총회임원회의 모호한 반응이었다.
일단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대해 명확히 답변을 주는 임원들이 적었다.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의견을 밝힌 임원도 있었지만, 일부는 진행 상황을 전혀 모르기도 했다. 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은 총회 임원회의 여러 안건 중 하나에 불과했고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는 모양새였다.
목사부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대응위의 매뉴얼이 내용과 용어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매뉴얼 감수를 총신대 교수에게 맡겼고 그 결과를 대응위에 전달하라고 총회 사무국에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임원회의 조치가 정작 대응위와 공유되지 않았고 행정적으로도 미숙하게 처리됨에 따라 공전을 피할 수 없었다.
대응위가 총회 임원회에 연석회의를 요구한 1, 2차 공문 역시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결국 3차 공문이 발송되서야 총회 임원회는 연석회의 여부를 결정했고 8월 22일 제108회 총회를 한 달여 앞두고 매뉴얼 처리에 대한 임원회의 견해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대응위에 전달됐다. “연석회의 건은 회기 시일이 촉박하기에 해 위원회로 성윤리 예방 및 대응 메뉴얼 검토문을 보내어 참고토록 한다(이후 총회 보고서에 게재).”
대응위는 8월 28일 총회 임원회의 성폭력 매뉴얼 수정사항을 받을 예정이다. 정중헌 대응위원장은 최대한 신속하게 반영해 총회 보고서에 매뉴얼을 게재하겠다고 밝혔다.
“교회 성문제 근절 매뉴얼에서 시작”
우여곡절 끝에 성폭력 예방 및 대처 매뉴얼이 제108회 총회 총대들에게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회에서 첫선을 보일 성폭력 매뉴얼의 명칭은 <교회 성윤리 예방 및 대응 지침서>다. 이처럼 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성윤리로 완화하면서까지 대응위는 총회의 정서를 살피며 공을 들였다.
지침서에는 예방과 대처를 중심으로, 피해지와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수록돼 있다. 특히 피해자를 다각적으로 배려한 점은 앞선 교단들의 매뉴얼에도 뒤지지 않는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교회 성폭력 피해 사례가 발생한 교단이 우리 교단(전체의 15%)이라고 밝혔다. 교회 성폭력 피해 문제는 더 이상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총회 차원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교단의 성폭행과의 싸움은 매뉴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교단이 자체 성폭행 관련 매뉴얼을 보유해 노회와 전국 교회에 뿌리는 것은 지극히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교회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도의 심정은 암흑 자체다.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우울증을 앓거나 되려 가해자에게 이용을 당하기까지 한다. 새소망교회에 성폭행 대처 매뉴얼이 있었다면 당연히 참고해서 즉각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인천새소망교회 바르게세우기 모임 이경숙 집사의 말이다. 새소망교회(현 한소망교회)는 김다정 목사(개명 김다현)의 그루밍 성폭행으로 여러 여성도가 피해를 입었다. 현재 김다정 목사는 수감 중이다.
성폭력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이자 교회와 교단적 차원의 문제다. 화재 예방과 대처에 지침서가 반드시 필요하듯 전국 교회에 성폭력 매뉴얼의 보급이 시급하다. 우리 총회가 성폭행 대처 매뉴얼 보유 교단이 되느냐 마느냐는 제108회 총회 총대들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