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철 여행지를 가면 누구나 맛집, 핫플레이스를 수시로 검색한다. 1년에 딱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렇게 만나는 명소는 여행 내내 뿌듯함을 주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여름철 휴가지에는 의외로 의미 있는 장소가 많다. 그중 하나가 역사의 흔적, 더욱이 나와 무관치 않은 선대의 자취가 남아있는 명소도 포함된다. 서양 선교사들의 흔적이 그것이다. 특히 구한 말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고단한 사역을 잠시 내려놓고 쉼을 가졌던 여름 휴가지가 의외로 많다.
선교사들은 한양(서울)에서 길고 깊은 휴가 시간을 갖곤 했다. 북한산성은 1888년부터 미국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사들의 소풍과 여름 피서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선교사들은 수려한 산세와 성곽에 매료되었다. 이들을 위해 중흥사는 기꺼이 방을 내주었다. 승동교회를 세운 사무엘 무어 선교사의 첫아들도 8월, 중흥사에서 태어났다. 무어 선교사는 열흘간 머물며 주지와 승려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남한산성도 마찬가지였다.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남한산성과 행궁, 산중 사찰에서 피서를 가졌다. 옥성삼 교수(감신대)에 따르면 1891년, 선교사들이 7주간 머물며 산성 주민의 진료도 겸하여 가졌다고 한다.
올여름 동해안에서의 휴식을 계획 중이라면 강원도 고성 화진포 방문을 추천한다. ‘김일성 별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실 셔우드 홀 선교사가 1938년 세운, 외국 선교사들의 대표적인 여름 휴식처였다. 홀 선교사는 광혜원 설립에 이어 1932년 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씰을 만든 장본인으로 의료 선교에 크게 이바지했다. 별장에서 내다보이는 화진포해변의 풍광이 기막히다. 현재 별장 입구에 있는 화진포생태박물관에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마련되고 있다.
머드축제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에도 선교사들의 자취가 잘 보존돼 있다. 대천수양관(TBA)은 옛 선교사들이 휴식과 질병 치료, 성경 번역과 연구 등을 위해 머물던 곳이었다. 서양식 오두막집과 돌집, 일본식 가옥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국적이면서도 호젓한 산책과 휴식이 가능하다.
선교사들은 사역만큼이나 휴식도 열정 적으로 가졌다고 한다. 휴가지에서 만나는 선교사들의 자취는 그들의 헌신과 열정을 새겨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