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73년만에 돌아온 ‘故최임락 일병’…尹, 국군유해 7위에 경례|동아일보


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전사자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전사자 고 최임락 일병의 유해를 유가족(조카)인 최호종 해군 상사가 봉송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에 있던 6·25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유해 7위는 7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국방일보 제공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전사자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전사자 고 최임락 일병의 유해를 유가족(조카)인 최호종 해군 상사가 봉송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에 있던 6·25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유해 7위는 7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국방일보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정전협정 70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고국으로 돌아온 6‧25 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7구를 최고 예우로 맞았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군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에서다. 돌아온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고(故) 최임락 일병의 동생은 최 일병에게 “목숨 바쳐 주신 우리나라가 이제는 등 따시고, 배부르게 잘 사는 자유 대한민국이 되었다”며 “형님을 찾아주신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밤 서울공항에서 6‧25 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를 주관했다. 이번 행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3월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달 현충일 추념사에서 “제복 입은 영웅들과 그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자긍심을 가지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돌아온 유해 7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수습한 유해 3구, 이후 미군이 단독 발굴한 유해 1구, 북한이 미국으로 보낸 유해 2구, 미군·북한군이 공동 발굴한 유해 1구다. 특히 7구 중 1구는 1950년 8월 육군에 자원입대해 그해 12월 12일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최 일병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행사를 앞두고 최 일병의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최고의 군 예식으로 전사자들을 맞이하도록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7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최 일병을 조국의 품으로 다시 모시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군전사자 유해는 우리 공군 특별수송기 KC-330으로 송환됐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이날 오전 6시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으로부터 유해를 인수했다. 특별수송기는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면서부터 공군 F-35A 편대의 호위를 받아 최 일병의 고향인 울산 상공을 거쳐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유해가 조국에 도착하자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윤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특별수송기 앞에 도열해 거수경례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최 일병의 유족과 함께 앞으로 나가 유해를 맞았다. 최 일병의 동생 최용 씨(79)는 편지를 통해 “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서 고맙다”며 “형님, 이제 나라 걱정은 마시고, 우리 땅에서 편히 쉬시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최 일병에게 직접 참전 기장을 수여했다. 기장은 훈·포장과 달리 특정한 사건과 업적, 날 등을 기념해 수여하는 ‘기념장(紀念章)’이다. 윤 대통령은 운구 차량이 서울공항을 출발해 유해가 안치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거수경례를 하며 영웅에 대한 예를 갖췄다.

최 일병은 유가족과의 안장 절차에 대한 협의가 끝나면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정부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6구에 대해서도 기록 분석과 정밀 감식, DNA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 나갈 방침이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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