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까지 총 1시간40분 걸려 응급상황 넘겨
“지옥문 열리기 직전…의료체계 정상화 시급”
갑작스런 조기진통으로 병원을 찾은 임신 9개월 임신부가 미숙아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1시간 만에 겨우 찾아낸 사연이 전해졌다. 임산부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신 32주 5일차인 임신부 A씨는 경기도 평택의 한 산부인과 의원에 임신 30주차부터 입원 중이었다가 이날 새벽 갑작스런 조기 진통을 겪었다. A씨는 2.5kg이 조금 넘는 태아의 조기분만에 대비해 미숙아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긴급 전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8~9곳 정도가 어렵다고 답해 1시간 가량 만에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A씨가 입원 중이었던 경기도 평택 라움 산부인과 이성윤 원장(대한산부인과의사회·분만병원협회 의무이사)은 “조기진통이 찾아온 32주차 5일된 임산부에게 자궁수축억제제를 썼지만 조절이 잘 안 돼 출산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 됐다”면서 “신생아 중환자실이 갖춰진 병원을 찾아야 해 새벽 1시부터 전원 의뢰 전화를 돌렸지만, 8~9곳 정도가 어렵다고 답해 전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까지 전화만 1시간 가량 돌렸다”고 말했다.
조기진통이란 만삭이 되기 전 (임신 20주 이후부터 37주 미만) 규칙적인 자궁수축과 함께 자궁경부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조산한 아기는 폐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아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나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A씨의 아기는 머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엉덩이가 밑으로 향하는 ‘둔위(역아)’ 상태여서 수술을 염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천안 지역 병원 2곳, 분당 1곳, 수원 2곳, 동탄 1곳, 서울 2곳 등에 전원 가능 여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전원이 어렵다고 밝힌 이유는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인 신생아 중환자실 베드가 없다”, “태아 주수가 아직 낮다”, “34~36주 사이는 받을 수 있지만, 33주 미만은 어렵다” 등 다양했다.
이 원장은 1시간 가량 수소문한 끝에 용인 세브란스 병원으로부터 전원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고, 119의 도움을 받아 A씨가 용인 세브란스 병원까지 이송되기까지 다시 40분 정도가 소요됐다.
대학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세부 전문의 등 부족으로 신생아 케어가 어려운 신생아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 원장은 “과거 30주 미만 미숙아는 정말 전원을 보내기 어려웠지만 32~33주 정도는 웬만하면 다 받아줬다”면서 “그런데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키는 의사가 부족해지다 보니 주수가 조금만 낮아도 안 받으려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다행히 출산을 바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고 뱃속에 있는 아기도 괜찮은 상태라고 한다. 현재 분만일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한 치료를 받고 있다.
조기분만의 위험이 있는 임신부는 신속한 치료를 통해 분만일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임신 37주 이하에서 출생한 조산아의 예후(경과)는 주수에 따라 차이가 있고, 생후 합병증 역시 주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은 “다행히 전원된 엄마와 아기가 위급한 상태는 아니었다”면서 “살짝 통증이 있어서 분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나갔고 (임신부가) 일반 병실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최근 야간에 당직을 서는 전담 의사가 한 명 투입돼 기존에 미숙아를 주로 돌보던 장욱 소아청소년과 교수(고위험 신생아·미숙아 등 담당)와 함께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다.
이 원장은 “헬게이트(지옥문)가 열리기 일보 직전으로 심각하다”면서 “나만 아니면 돼. 이게 언제까지 통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신생아 세부 전문의가 많이 빠져나갔다”며 “그분들이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생아 세부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중에서도 추가적으로 수련을 견딘 숙련된 전문의다. 신생아 전문의는 말 못하는 아기의 미세한 변화를 24시간 관찰해야 하는 데다 의사 부족으로 당직도 많이 서야 하지만 보상은 적어 소아과 전공의 사이에서 대표적인 기피 영역이다.
미숙아의 신체에 맞게 특수 제작된 장비들은 일반 의료장비 보다 비싸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반면, 미숙아들은 한 번 입원하면 수 개월 간 입원해 병상 회전율이 매우 낮아 병원들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신생아실 담당 의사들의 복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공무원, 법조계, 정치인들에게 누누히 얘기했다”면서 “의료시스템 자체가 정상화되지 않은 채 개인의 희생에 기대 병원이 돌아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건축 중인 아파트가 붕괴된 것을 보면 엄청난 돈을 들여 재시공 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전혀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며 “이미 아이들을 숱하게 숨지게 만들었고, 더 죽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