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한 교회에서 감당해 온 목회사역을 마치는 것은 개인으로서든, 공동체로서든 하나의 시대를 정리하는 뜻 깊고도 영예로운 일이다. 그 과정을 순탄하게 진행하고, 원로목사로서 후임자에게 평안히 리더십을 이양할 수 있는 것도 당사자들에게는 큰 복이다. 그 은혜를 누린 두 교회의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도목회 계승하는 김천제일교회
조병우 목사가 25년 동안 담임목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김천제일교회는 지역사회와 이웃교회를 잘 돌보는 교회, 군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라는 평판을 얻었다. 절기헌금은 모두 국내외 선교후원에 흘려보내고, 임직자들의 헌금은 장학사업에 기부하며 풍성한 열매들을 거두어왔다.
하지만 정작 은퇴를 맞이하는 조병우 목사 자신에게 가장 큰 보람과 감사로 남는 일은 따로 있다.
“교인들 중 어느 누구도 ‘목사의 사람’으로 만들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목회가 아니었기에, 감사하게도 은퇴하는 순간에 누구에게도 마음의 빚이 남지 않았습니다. 성도를 목회의 성공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막바지 성도들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목회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 소망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정말 빚진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모든 사역에 공감을 보여주고 헌신적인 동역으로 뒷받침해준 부교역자들과 교우들을 인해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 조 목사의 솔직한 고백이다.
“언제부터인가 예배강단에 오를 때마다 손수건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부족한 설교에도 뜨겁게 반응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대하면서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하기 힘들었던 적이 많았거든요. 목회 기간 내내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은혜였습니다.”
6월 24일 김천제일교회 원로목사 추대를 받으면서 이제는 강단에서 내려왔지만 조 목사는 여전히 설교를 한다. 매일 한 편씩 정성 다해 준비하는 이 설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는 설교’라고 한다. 더 이상 목회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을 그는 남은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조병우 목사가 애써 쌓아온 사역의 토대들은 후임 장동우 목사가 물려받는다. 원로목사로부터 인격적 성숙이 깊어지는 교회로 이끌어달라는 당부를 받은 장 목사는 대전 새로남교회에사 사역하던 시절부터 익혀온 ‘천천히 가더라도 바른 목회’ ‘한 영혼 한 영혼을 잘 세워나가는 목회’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있다.
장 목사는 “주보에 정기적으로 목회서신을 올리며 교우들과 소통에 힘써 오신 원로목사님의 방식을 저도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설립 70주년을 맞은 김천제일교회가 지금까지의 바탕을 발판 삼아 더 높이 도약하도록 정도목회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역사의 길 확장하는 여수제일교회
“고향으로 돌아와 목회하는 일에 처음에는 기대도 컸지만 걱정도 작지 않았어요. 특히나 100년 넘는 역사동안 먼저 거쳐 가신 선배 목회자들의 명성으로 인한 부담이 엄청났습니다.”
6월 24일 원로목사 추대를 받은 김성천 목사는 여수제일교회에 부임하던 20년 전을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살도 과장도 아니다. 실제 역대 여수제일교회를 담임했던 목회자들의 면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 곽우영 목사를 비롯해 4대 김순배 목사, 6대 김상두 목사 등이 3·1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3대 조의환 목사는 여수제일교회가 정식 교회로 설립되기 이전부터 예배를 인도해 온 영수 출신이었고, 제8대 박종삼 목사는 자유주의 신학에 맞선 51인 신앙동지회의 핵심 멤버였다.
“뿐만 아닙니다. 손치호 목사님(제7대) 최성원 목사님(제9대) 그리고 제 전임이신 정성규 목사님(제12대)는 교단 총회장을 지낸 분들이셨습니다. 이 거두들의 뒤를 이어 부끄럽지 않은 목회자의 길을 가야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김 목사는 부담에 짓눌리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광신대에서 역사신학을 강의하는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교회 설립자 김암우 여사의 구체적 행적들을 밝혀냈고, 6·25전쟁 당시 순교자 윤형숙 전도사와 김은기 집사의 사적을 발굴해 총회순교자 명부에 등재시켰으며, 예배당 건축 중 순직한 김선영 목사의 추모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여수제일교회는 더욱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김성천 목사가 은퇴를 앞둔 시점에는 총회역사위원회를 통해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심사를 받는 경사까지 생겼다. 사적지 지정까지 남은 몫은 후임으로 부임한 박응진 목사가 물려받는다.
원로목사 추대식에서 김성천 목사는 은퇴기념으로 출간한 영문판 교회사 연구서 <A Narrativ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를 후임 목사와 정든 교우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한결 같고도 훈훈한 마무리였다.
박응진 목사는 “내년 교회설립 120주년을 맞이하면서 원로목사님이 수집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교회 안에 역사박물관을 설치하고, 명망 있는 신학자와 역사학자들을 초청해 역사세미나를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여수제일교회의 다음세대들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계승하는 주역들로 설 수 있도록 열심히 양육할 것”이라고 밝힌다.
사진설명>>1)정도목회의 길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김천제일교회 조병우 원로목사와 장동우 담임목사.
2)고귀한 역사를 계승하는 릴레이 주자로 달려가는 여수제일교회 김성천 원로목사 부부(사진 앞줄)와 박응진 담임목사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