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철학자 신국원 교수가 총신대 교단에서 물러났다. 신 교수는 2018년 6월 정년은퇴를 한 후에도 명예교수로 가르쳤다. 30년 동안 서 있던 교단에서 마지막 강의를 지난 6월 20일 마쳤다. “총신은 나의 삶 자체이며 내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신국원 교수를 6월 29일 만나 인터뷰했다.
신국원 교수는 1994년 총신대 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명예교수로 가르친 5년을 합쳐 30년 동안 총신대에서 기독교철학을 가르쳤다. 공식적으로 신 교수가 총신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 신학과에 입학했을 때다. 하지만 그 전인 1970년 총신대 신학과에 입학한 이력이 있다. 청년 시절 목회의 소명이 부족함을 느끼고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50년 넘는 시간을 총신과 함께 했다.
신국원 교수는 총신대에서 8과목을 가르쳤다. 고중세철학, 근대철학, 기독교철학사, 포스트모더니즘, 기독교와 문화, 철학원강(Ⅰ,Ⅱ), 기독교세계관과 철학 등이다. 1학년 신입생들에게 총신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영적지도자훈련’과 ‘기독교섬김리더십훈련’도 신 교수가 오랫동안 담당했다.
“총신은 전통적으로 다른 신학교보다 기독교철학을 중요하게 여겼다. 70년대부터 하비 콘(간하배) 교수를 비롯해 좋은 선생님들이 개혁주의 기초 위에서 기독교철학을 가르쳤다. 그 영향으로 나 역시 기독교철학을 전공하고 기독교세계관과 문화신학까지 나아갔다. 이 전통을 총신이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
신 교수의 강의는 늘 수강생이 100명을 넘을 정도로 인기였다. 모든 강의에 열정을 쏟았지만 특히 신입생들에게 총신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영적지도자훈련’ 과목에 정성을 들였다고 했다. ‘영적지도자훈련’은 1학년 학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할 과목이다. 학생들은 외부에서 초청한 분야별 전문 강사들에게 90분 강의를 듣고, 조별모임에서 토론을 하며 공동과제를 했다.
신 교수는 직접 강사들을 섭외하고, 수업을 하는 날이면 조교들과 함께 낮 12시부터 밤까지 매여 있었다. 덕분에 교내 수업 만족도 평가에서 해마다 1위에 올랐다. 2007년부터 10년 동안 이 과목을 놓지 않았다. 그토록 열정을 쏟은 이유는 “총신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성경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하고,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야 함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경으로 바라보고 실천하는 삶’ 그것은 바로 기독교세계관운동이다. 신국원 교수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서 기독교세계관을 퍼뜨리고 실천했다.
하지만 최근 신국원 교수는 한국교회 내부에서 ‘기독교세계관’을 잘못 이해하고 이념화하는 현상을 우려했다.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세계관을 특정 이념(이데올로기)에 매몰시키는 잘못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세계관은 성경의 진리에 기초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념은 강제성과 폭력성을 갖고 있다. 기독교세계관은 좌우이념이 아닌 새로운 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길이 아니라 복음의 길, 성경이 제시한 길이다. 그래서 기독교세계관은 이념이 보여주는 것과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이 바른 길임을 보여줘야 한다.”
기독교세계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 있다. 바로 신국원 교수가 집필한 <니고데모의 안경>(IVP)이다. 2005년 책이 처음 나온 이래 지금까지 기독교세계관 분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작이다. 20여 년 동안 시대와 사회는 크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기독교세계관’을 가장 쉽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신 교수는 <니고데모의 안경> 뒤를 이을 기독교세계관 책과 기독교변증서 등 미뤄둔 책들을 집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며 웃었다.
신국원 교수는 사실 기쁨과 축하 속에서 은퇴하지 못했다. 정년퇴임할 때는 총신사태로 제대로 된 은퇴식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함께 4개월 동안 기도회를 하면서 학교를 지켰다. 명예교수로 일할 때도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3년 동안 제대로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1학기에 학생들과 수업을 한 것으로 위안하고 있다.
하지만 신 교수는 “돌아보면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삿대질하고 욕하는 교수와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매일 기도를 했다.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수련회를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