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의 장미꽃, 다시 고목의 꽃과 열매로” < 목회현장 < 목회 < 기사본문



승동교회는 겸손히 서로 섬기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제16대 담임 최영태 목사는 겸손이 승동교회의 오랜 정신이자 성도의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승동교회는 겸손히 서로 섬기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제16대 담임 최영태 목사는 겸손이 승동교회의 오랜 정신이자 성도의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130개의 나이테


130년 전 승동교회의 첫 주일도 이렇게 화창했을까. 햇살 가득한 6월 18일 아침, 승동교회가 특별한 주일을 맞았다. 교회 설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날, 교회를 찾은 교인들의 표정도 햇살만큼이나 밝다. 예배당으로 이어진 진입로에서 3·1 독립운동 기념터가 있는 마당까지, 교회의 역사와 교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백발의 어르신부터 아동들까지 사진 속 추억으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곤당골교회’ 승동교회(최영태 목사·경기노회)가 교회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승동교회의 역사는 겹겹의 나이테처럼 깊고 넓다. 구한 말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 소나무처럼 굳건했던 승동교회는 조선시대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세기를 넘는 영욕의 역사 현장에 있었다. 교회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종탑처럼, 암울하고 힘겨운 시대 속에서 고단한 민중을 일깨우는 ‘소리’였다.


③“이땐 그랬지.” 역사가 되어 버린 교회의 지난 흔적 속에서 교인들은 자신과 교우의 옛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땐 그랬지.” 역사가 되어 버린 교회의 지난 흔적 속에서 교인들은 자신과 교우의 옛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김희돈 기자


1892년 9월, 조선 땅에 닿은 사무엘 무어(Samuel. F. Moore·모삼열) 선교사(1860~1906)는 입국 9개월 만에 곤당골교회를 세웠다. 승동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복음을 들고 어두운 조선의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합니다.” 모삼열 선교사의 목회 철학에 따라 여자도, 백정도 신앙을 갖고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백정과 관련한 승동교회의 역사는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양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상으로부터 ‘백정교회’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모 선교사와 승동교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나라에 탄원서를 올려 백정도 갓을 쓸 수 있게 만든 것도 그의 굳은 신념의 결과였다. 교회도 기꺼이 백정(박성춘)이 장로가 되어 양반과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는데 순종했다.




승동의 저력


“교회로 인해 세상이 바뀐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승동교회가 일정 부분 그 역할을 감당했다고 생각해요. 승동교회는 사회운동 차원에서 신분 타파와 독립운동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선포된 말씀을 받고 보니 당시의 세상이 너무 어두웠던 겁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그 말씀에 순종해 영욕의 역사를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16대 담임 최영태 목사의 말이다. 최 목사는 5년 전 승동교회에 부임하면서 마음의 큰 부담을 느꼈다. 교단의 어머니 같은 교회이자 한국교회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컸다. 최 목사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암흑 같은 조선 땅에 도착한 사무엘 무어 선교사와 백정으로 첫 장로가 된 박성춘 장로.


“두 분을 생각하며 왜 저를 보내셨을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답은 낮아짐이었습니다. 종처럼 낮아짐. 겸손을 주제로 설교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님들은 불편한 기색 없이 늘 아멘으로 화답하셨어요. 승동교회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동이여, 영원하라” 130주년 교회설립기념예배는 영광과 감사의 시간이었다. 과거의 추억을 품되, 다시 믿음으로 오늘을 도전하자는 승동인의 다짐이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승동이여, 영원하라” 130주년 교회설립기념예배는 영광과 감사의 시간이었다. 과거의 추억을 품되, 다시 믿음으로 오늘을 도전하자는 승동인의 다짐이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일까. 승동교회의 130주년 기념주일 행사는 상당히 소소하고 소박했다. 승동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지나간 시간의 감사와 오늘의 은혜를 나누며 조용히 자축하는 정도였다. “승동이여, 영원하라”는 재기 어린 구호도 교인들은 수줍게 따라 했다.


승동교회 130주년은 6월 18일 사진전과 교회설립기념 예배, 추대 및 은퇴식을 시작으로 24일 파이프오르간 독주회, 25일 GMS총회세계선교회와 함께하는 선교주일, 곤당골 찬양제 등 조졸한 기념의 시간이 이어졌다. 승동교회는 선교주일에 드린 헌금 전액을 베트남, 남아공, 인도 등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지와 GMS에 전달한다. 최영태 목사는 설립 기념예배 설교에서도 겸손을 강조하면서 성령 충만한 삶으로 새 역사를 써갈 것을 도전했다.


‘곤당골 찬양제.’ 승동교회 교인들이 25일 130주년을 기뻐하며 찬양제로 감사를 고백하고 있다.
‘곤당골 찬양제.’ 승동교회 교인들이 25일 130주년을 기뻐하며 찬양제로 감사를 고백하고 있다.


“130년 전 무어 목사님이 복음을 들고 어두운 땅에 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비춰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나와 빛을 비추면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엄혹한 시대의 고난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 멈추지 맙시다. 교회의 역사는 흘러갑니다. 바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을 힘입어 계속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다시 새 역사


최 목사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한 사람’이 되자며 130주년의 의미를 다시 오늘의 역사를 써나가는 출발선으로 삼자고 권했다. 특히 젊은 세대를 향한 마음이 각별하다. 곧 재개관할 승동역사관 역시 다음 세대,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승동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백발의 어르신들 사이사이로 꽤 많은 어린이와 청년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오래된 교회지만, 다음 세대를 향한 관심과 고민이 크다. 승동교회는 작년에 이어 올여름에도 미자립교회의 중고등학생들을 수양관에 초대해 사흘간 무료로 수련회를 갖는다.


승동교회는 130주년을 즈음해 기념역사관의 재개관을 준비했다. 젊은 세대를 위해 현대적인 면모를 반영했다.
승동교회는 130주년을 즈음해 기념역사관의 재개관을 준비했다. 젊은 세대를 위해 현대적인 면모를 반영했다.


“장로님들께서 “가슴이 뛴다”고 하여 시작한 사역입니다.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함께 교회학교를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전국 교회의 교육 현장이 심각합니다. 교회에 아이들이 없어서 보낼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황무지에 장미꽃처럼 피었던 승동교회는 이제 커다란 고목이 되었다. 130년의 세월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면서 그분 앞에서 명분과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엄중한 소명이기도 하다. 승동교회는 섬김을 통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교회(엡 5:21)를 그리고 있다. 성도와 교회, 다음 세대와 이웃을 겸손히 섬김으로써 고목나무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기를 소망한다.


“꽃도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고 열매도 이웃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승동교회라는 고목의 꽃과 열매가 누군가에게 귀한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비전에 승동교회 성도들의 동의가 빠르고 뜨겁습니다. 이것이 승동교회의 힘입니다.”


 


‘1893~2023’ 승동의 성도들은 130주년을 맞아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사진전과 복음역사전은 승동교회 성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893~2023’ 승동의 성도들은 130주년을 맞아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사진전과 복음역사전은 승동교회 성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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