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사] 다시예배+/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서비스는 바로 예배입니다 < 기독AD < 기사본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귀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예배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첫 부분에 구약의 두 사람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구약의 흐름을 잇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가장 앞에 올려야 할 정도로 비중 있는 두 사람입니다. 왜 이들일까요?


구약성경을 통해 찾게 되는 그 이유는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와 관련되어 성공적인 두 사람이 바로 이들입니다. 


예배자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라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그가 남긴 흔적은 예배였습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바로 오늘의 예배를 의미합니다(창 12:8,13:18,21:33). 여호와의 이름은 존재 자체이며 그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 분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이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됩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은 자기의 이름을 내는 자였고(창 4:17)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리고 죽은 아벨의 후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4:26). 가인이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부르는 것을 통해 인간 예배의 최초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면 아벨 대신 주신 셋의 후손 에노스 대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아벨을 잇는 예배자임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 예배를 추구하지만 하나님께서 헐어버리고 맙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예배를 이어간 후손들 이야기가 뒤에 이어집니다. 아버지, 할아버지의 예배자로서의 신앙 행위는 그대로 후손들에게 이어집니다.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진 것입니다(창 26:25,33:20,35:7). 그런 예배의 유산을 물려준 아브라함의 최고의 예배가 바로 아들 이삭을 드리는 것입니다(창 22:1~19).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그 태도가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 순종을 하는 예배를 드렸듯이 사무엘 선지자는 그 순종하는 삶이 진정한 예배임을 선포하였습니다(삼상 15:22~23).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담임목사)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담임목사)


 


예배와 관련된 다윗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이라는 큰 흐름이 이어오다가 다윗에게로 연결됩니다. 그는 더욱 큰 이름을 남깁니다. 그는 구약성경이라는 큰 산맥에서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면 왜 다윗일까요? 그 역시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는 예배하는 자로 등장하고 예배하는 자로 살다가 예배로 마무리 합니다.


다윗의 등장에서 부각됩니다. 그가 왜 골리앗과 싸웠을까요?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는 이방 사람인 골리앗에 의해 여호와의 이름이 짓밟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해 골리앗과 대결을 하고 승리합니다. 그가 싸움에 나서서 선포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최고의 이름을 남기는 왕이 됩니다.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의 도성을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옵니다. 그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예루살렘에 언약궤를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면서 다윗의 기쁨은 극에 달합니다. 춤추면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삼하 6:13~15). 그리고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립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히 왕궁이 있는 곳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모신 것이고 그 성읍에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후에 다윗은 자신이 평안할 때 그 성읍에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성전 짓기를 소원하였고(왕상 8:20) 성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겠다, 즉 여호와께서 거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왕상 8:29). 


그런 예배자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삼하 7:9). 그 약속대로 최고의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불린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만이 아니라 성전을 위해 역대상 28장에서 그 건축을 유언으로 남기고 29장에서는 엄청난 건축헌금을 드리며 감격스러워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실제는 다윗이 지어드린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다윗의 재임 기간에 성전예배를 위한 모든 제도 정비에 힘을 쏟았음을 역대상에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그가 찬양대를 세워 하나님을 예배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참된 예배자였습니다. 평생이 예배하는 삶이었고 그런 다윗은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존귀한 이름의 복


아브라함과 다윗, 이들은 예배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고 예배에 모든 힘을 쏟은 그들을 최고의 인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름을 높여주셨습니다.


십계명에서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된 계명이 있음을 앞에서 언급했지만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역시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내용을 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에 힘을 쏟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을 신약성경의 시작에 담으며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존귀하게 살다가 예배의 대상이었던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다윗의 죽음을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기록하는 것은 예배자의 영광스러운 삶과 그 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대상 29:28).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다윗이 태어나고 다윗의 후손 중에 왕들이 이어지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씨는 바로 메시아이며 구약이 강조하는 다윗의 후손이며 다윗의 허리에서 이어질 왕과 그 영원한 왕국은 바로 메시아와 그 메시아 왕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귀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교회생활, 신앙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봉사보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서비스는 바로 예배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도 예배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제 “다시 예배”하는 신앙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세상의 온갖 즐거움에 빠질 위험에 처한 우리 인간들에게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신 기간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예배’한다는 자세로 다시 교회를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일하는 교회가 아닌 예배하는 교회가 되면 모든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는 예배하는 삶의 열매로 연결될 것입니다. 다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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