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김정은은 지난달 31일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또 부하들 탓으로 돌렸다. 지난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선 “최근의 가장 엄중한 결함은 우주개발 부문에서 중대한 전략적 사업인 군사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위성 발사 준비 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한 일꾼들의 무책임성이 신랄하게 비판됐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회의장에 인상을 잔뜩 쓰고 앉아 있었다. 사진을 엄선해서 공개했을 텐데도 웃는 표정은 없었다. 얼굴은 심하게 붓고 눈 주위엔 짙은 다크서클이, 왼쪽 볼에는 큰 뾰루지가 생겼다. 요즘 심기가 내내 불편하다는 방증이다.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연설을 하지 않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쯤 되면 회의장 분위기는 안 봐도 뻔하다. 참석자들은 숨소리도 못 내고 있었을 것이다. 군인들이 무책임하다고 추궁당한 간부들을 끌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번 실패는 그냥 폭발로 끝난 것도 아니고 2단 로켓을 한국에 헌납한 치욕스러운 실패이기도 하다.
정찰위성 발사 실패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책임 소재를 어떻게 따질지가 제일 궁금했다. 김정은이 용서해 주는 결말도 살짝 기대했다.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는 간부들을 처벌하면 북한의 위성 개발은 그만큼 후퇴한다. 새로 임명된 후임들은 더 위축돼 제대로 일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격려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번에도 충성심이 부족한 간부들의 무책임성이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건 담당자들의 충성심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무책임해서도 아니다.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할 줄은 서울에 앉아있는 나도 예측할 수 있었다. 지난달 15일 칼럼에서 “흑연전극 하나 못 만들면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정찰위성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냐”며 “과학기술 분야를 시간을 정한 내기처럼 호언장담하며 접근하는 태도에 한숨이 나온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은 때려죽여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배우길 바란다”고 썼다.
정찰위성은 지금까지 북한이 시도한 과학기술적 도전 중에서 가장 고난도에 속한다. 정확한 고도에서 정확한 힘과 각도로 위성을 분리시켜야 하는 위성 발사체는 대륙간탄도미사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 강대국인 한국도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12년 3개월이 걸렸다. 지난달 성공한 국산 발사체 누리호를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300개가 넘는 내로라하는 기업이 참가했다. 자동차 한 대에 부품이 2만 개 들어가고, 항공기 한 대에 부품이 20만 개가 들어간다. 누리호에는 무려 37만 개가 들어갔다. 한국은 세계적인 현대차도 있고, 세계 8번째로 초음속 전투기도 개발한 나라이지만 위성 발사 로켓은 지난달에 완성시켰다. 여러 차례 발사체 엔진이 폭발했고, 엔진 설계만 20번 넘게 바꾸었고, 엔진 연소 실험은 184번이나 거쳤다.
북한은 승용차도 자체로 만들지 못하고, 항공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엔진 연소 실험을 어쩌다 한 것을 신문에 대서특필하며 자랑하는 북한이 위성을 단번에 성공시키지 못했다고 실무자들을 처벌하니 참 황당하다.
사실 처벌의 1순위는 김정은, 김여정 오누이임을 그 자리에 참가한 간부들은 다 알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12월 20일 김여정이 정찰위성 개발을 헐뜯는다고 한국을 향해 막말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하겠다고 한 것을 못한 것이 있었는가”라고 호언장담한 데서 시작됐다. 발사를 약속한 4월이 되자 김정은은 국가우주개발국에 찾아가 비상설 위성발사 준비위원회를 만들게 하고 계획된 시일 내에 발사하라고 지시했다. 기한에 쫓겨 발사한 위성은 결국 실패했다.
북한은 위성을 이른 시일 안에 재발사한다고 밝혔지만, 성공 가능성이 이번이라고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간부들을 거듭 처벌하고, 없는 외화를 탕진해 넣어봐야 자존심만 점점 더 구겨질 것이다. 위성은 북한이 호언장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정찰위성 실패를 통해 북한이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하겠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교훈이다. 역사를 훑어보고, 주변을 둘러봐도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