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빛과 색으로 연주한다 < 전시회 < 문화 < 기사본문



음악의 시각예술화 분야에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자리잡고 있는 이다희 작가는 스스로 고안한 음악 번안 시스템을 통해 바흐의 평균율을 시각화하는 ‘평균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미션’을 주제로 열린 이번 기획전에서는 바흐의 평균율 중 13번 전주곡을 격자 형식의 무늬로 시각화 한 수채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음악의 시각예술화 분야에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자리잡고 있는 이다희 작가는 스스로 고안한 음악 번안 시스템을 통해 바흐의 평균율을 시각화하는 ‘평균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미션’을 주제로 열린 이번 기획전에서는 바흐의 평균율 중 13번 전주곡을 격자 형식의 무늬로 시각화 한 수채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모든 음에는 그 음만의 독특한 색깔이 존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저만의 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음악을 구성하는 각각의 음들을 그 고유한 빛깔과 울림, 질감 등 시각적으로 표현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6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파소갤러리에서 진행된 이다희 작가의 기획 전시회 ‘인터미션’(Intermission)은 이다희 작가의 ‘평균율 프로젝트’ 후반부 시작인 바흐의 평균율 13번 전주곡을 주제로 한다.


갤러리에 입장하기도 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가 연주하는 전주곡이 아름답게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고즈넉한 한옥 공간을 잔잔히 휘감아 도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들어가면, 어두운 왼편 벽에 바흐의 평균율에 맞춘 특정 색의 빛이 프로젝션을 통해 비치며 색으로 구현된 음악을 시각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어 한 단 높은 정면 좌측 공간으로 이동하면 한윤제 작가가 이다희 작가의 음악 번안 시스템에 따라 13번 전주곡의 색채와 형태를 스테인글라스와 아크릴로 구현한 6각형 작품에 빛을 비춰, 맞은편 벽에 색이 입혀진 네모와 세모로 도형화 된 음악을 마주하게 된다.




이다희 작가는 “바흐가 곡을 쓰고 연주했던 주요 공간이 스테인글라스 창문이 달린 교회 공간이었는데, 한윤제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 공간을 재현해 바흐 평균율 13번 전주곡이 담고 있는 색채로 가득 채워진 교회 안 풍경을 눈과 귀와 울림으로 체험하게 했다”고 밝혔다.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색채 도형이 반영된 격자 형식의 무늬(grid)를 통해 이다희 작가가 직접 고안한 음악 번안 시스템으로 구현한 평균율 전주곡 13번 작품들을 여러 버전으로 차례차례 만나게 된다. 음악 번안 시스템은 추상예술인 음악을 연주된 소리의 음색과 음형을 색과 선, 도형 등으로 변환해 표기한 후, 음소 단위로 종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피아노 연주에서 양손이 서로의 리듬을 보완하고 맞물리는 전개 과정에서 규칙적인 리듬이 생겨나듯, 3박자 특유의 운율과 그루브를 시각화된 13번 전주곡 작품 속에서는 조각보처럼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도식화된 규칙적인 리듬의 패턴을 보며 다시 음악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




이 작가는 “바흐의 평균율 13번 전주곡은 그 곡과 음의 느낌이 물방울이 떨어질 때 물 위에 파문이 생기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수채화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울림을 보다 더 표현하기 위해 수채화가 그려지는 종이도 매끈한 것으로 선택해, 소리의 울림을 물감의 번짐으로 시각화했다. 한번 연주한 음악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인 것처럼, 이 작가의 수채화들은 그 찰나의 아름다운 울림들을 세밀한 붓 터치와 물의 번짐으로 생생하게 표현됐다.


이어 화성의 흐름을 강조한 작품, 음악의 구조를 강조한 회색 톤의 작품, 음악의 색채에 맞춰 ‘복숭아’ 빛깔과 채도를 높여 봄과 초여름의 향기를 담은 작품, 보색 대비를 통해 곡이 가진 따스한 색감을 돋보이게 표현한 작품, 한 줄에 들어가는 프레이즈를 늘여 가로로 길게 늘어선 도형들의 도식을 통해 곡 전체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작품, 작가가 고안한 음악 번안 시스템을 충실히 반영한 보다 선명한 색의 작품 등을 차례차례 감상해보자. 귀에서 들리는 바흐의 전주곡이 눈앞에 보이는 작품마다 다른 뉘앙스와 느낌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다희 작가의 ‘평균율 프로젝트’는 그 곡에 따라 음의 빛깔이 달라지는 특색에 따라 매 전시회마다 그 특색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아티스트 및 공학자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사진 이번 전시회에서 한윤제 작가와 협업해 만든 빛과 음악의 공간.  


이처럼 이 작가의 작품은 단순히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음악으로부터 오는 청각적 영감이 그 음악을 시각화한 작품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영혼에 큰 울림을 전한다. 이다희 작가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체를 시각화 하는 ‘평균율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곡마다 그 특성에 맞춰 작품의 재료 선정과 협업할 아티스트, 전시 형태 등도 다채롭게 변화되어갈 것이기에 앞으로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다.


작가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절대음악’이기에 그 안정된 틀 안에서 그 음악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색채와 형식을 그에 걸맞은 재료와 방식으로 시각화 하는 예술활동이 제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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