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죠수아 헤셸(1907~1972)이 1951년 출간한 〈안식〉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명저 중 하나다. 히브리 영성으로 심오한 존재론적 성찰을 제시한 그의 책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 주목한다. 헤셸은 공간을 정복하며 이루는 인간의 문명과 성취가 시간의 경계에서 한순간에 무력화됨을 일깨우며 시작한다. 시간을 들여 공간을 채우는 역사가 존재의 본질이 아니고 시간이 실존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헤셸은 시간, 공간,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대면하는 접촉점이 일곱째날(안식일)임을 영성학자의 통찰력과 시인의 감성으로 풀어준다. 안식일이 율법의 준수 혹은 일을 위해 휴식하는 날로 바라보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짚어준다. ‘영원(하나님 나라)’을 이 세계에서 맛보는 기회가 ‘안식일’이기에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라고 한다. 일상의 일·생각·감정을 내려놓고 주기적으로 쉬면서 하나님의 강복과 거룩함을 체험하는 시간이 안식일이다. 즉 7일마다 인위적인 활동과 일을 온전히 멈추고, 내 존재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현존에 집중함으로, 뒤틀린 삶의 리듬이 회복되는 시간이 바로 안식일이다.
“수고를 접고 쉬는 날인 안식일은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날이 아니며… 안식일은 생명을 위해 있는 날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자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작품인 안식일이야말로 창조의 목적’이다.”
신자유자본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무한경쟁, 산업화로 인한 기후 위기, AI와 정보통
신 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불안한 현기증 등 인류가 당면한 지구적 과제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은 인간 이성과 과학기술문명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인간의 부조리와 기술문명이 꽃을 피우는 시기에 헤셸은 공간의 위기를 공간의 변화만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통찰했다. 그는 시간의 성화를 통해 공간의 질서가 조율되고 공동체 삶의 리듬이 회복되듯이, 21세기 지구적 과제도 ‘‘안식일’의 재발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안식일이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the art of surpassing civilization)’이라는 헤셸의 예언자적 성찰은 변화가 일상화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값진 선물이다.
헤셸의 〈안식〉은 헨리 나우엔, 마르바 던, 월터 부르그만, 유진 피터슨 등 수많은 개신교 영성가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위기를 넘어서는 발판을 찾는다면 헤셸의 〈안식〉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