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치안 사각지대’…“음주폭행 흔하고 보복 우려에 신고도 안해”|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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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누군가) 술마시고 난동 부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어요.”

18일 서울 동대문구의 A 고시원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80대 남성은 “누군가 난동 피우는 소리가 나면 그저 방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 고시원에선 이달 11일 오전 1시경 조모 씨(45)와 안모 씨(60)가 양모 씨(66)를 50분 동안 구타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 씨와 양 씨가 복도에서 몸이 부딪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안 씨까지 가담해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동안 양 씨는 여러 차례 소리를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고시원 입주자 누구도 제지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양 씨는 이후 7시간 가량 복도에 방치돼 있었다. 오전 8시 경에야 이날 고시원에 처음 입주한 강모 씨(57)에 의해 발견돼 병원에 옮겨졌다가 이틀 후 숨졌다. 조 씨와 양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지만 12일 구속됐다.

19일 만난 A 고시원 입주자들은 “술주정과 고성은 일상”이라며 “이웃 일에 하나하나 신경 쓸 수 없는 게 고시원의 현실”이라고 했다. 7년간 이 고시원에서 살았다는 60대 남성은 “술마시고 복도에 대소변을 보는 사람이 있어 고시원 관계자를 통해 항의했는데 얼마 후 갑자기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이 고시원에 8년 동안 거주했다는 중년 남성도 “시끄럽다고 (다른 방을) 찾아가면 말싸움이 시작되고 해코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방) 밖으론 아예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A 고시원의 복도는 폭이 1.5m 가량인데, 중간중간 냉장고가 놓여 있어 몸을 돌리지 않으면 통행이 어려웠다. 복도에선 방에서 나오는 TV 소리와 통화 내용이 그대로 들렸다. 한 입주자는 “방과 방 사이가 얇은 합판이어서 방음이 전혀 안 된다”고 했다. 이 고시원 방은 월 25~40만 원인데 숨진 양 씨는 가장 저렴한 월 25만 원짜리 방에 살았다. 창이 있는 40만 원짜리는 대부분 공실이었다.

신고자 강 씨는 “전에 총무로 일하던 고시원에선 내가 술을 못 마시게 했다. 만취한 채로 들어오면 다른 곳에서 자고 오라고 돌려보냈다”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인데 그렇게라도 해야 안전할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A 고시원에 방이 20개 정도 있고 절반 이상 차 있었으니 사건 당시 적어도 10명은 방에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양 씨의 장례는 조만간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공영장로 치러질 예정이다.

주현우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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