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도발 강도를 높이던 북한이 결국 미국 동부 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사실상 성공했다. 북한은 7번째 도전 끝에 화성-17형을 정점고도 6000㎞, 수평비행거리 1000㎞, 최대속도 마하 22에 달하는 괴물로 완성했다. 물론 북한 측 주장처럼 ‘행성 최강 ICBM’이 되기 위해선 재진입 기술과 다탄두화 기술 개발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그럼에도 이번 미사일 발사 성공은 북한이 미국 워싱턴 DC나 뉴욕까지 날아갈 수 있는 투발 수단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에 상당한 충격을 가했을 테다.
中 20년 걸린 미사일 개발, 北 3년 만에 성공?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 후 오랫동안 실제로 발사된 적 없는 그야말로 모형 단계였다. 화성-17형은 2012년 12월에야 추진체 엔진 연소 실험이 진행됐을 정도로 뒤늦게 개발됐다. 그런데 엔진 연소 실험 3년 만에 사거리 1만5000㎞(정상 각도 발사 기준)를 구현했을 정도로 개발에 들어간 시간이 대단히 짧았다. 비슷한 체급의 중국 DF-41 개발에 20여 년, 러시아 RS-28에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이상하리만치 짧은 개발 기간이다. 북한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빠른 개발은 외부 도움을 감안하지 않고는 설명이 어렵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최근 화성-17형 발사차량 제작에 중국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대거 등장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플랫폼은 대부분 대형트럭이다. 북한과 중국이 함께 설립한 ‘덕중자동차합작회사’ 제품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중국산 트럭 부품을 받아와 조립한 것이다. 이 회사는 북한에선 생산되지 않는 대출력 디젤엔진과 변속기, 대형트럭용 타이어 등 부품들로 트럭을 만들고 있다. 이런 부품들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위반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올해 8월과 9월 ‘해관총서’ 자료에 버젓이 ‘대형트럭용 타이어’ 수출 사실을 공개해 보란 듯이 북한을 돕고 있다.
북한이 공개한 화성-17형 발사 통제소의 통제 콘솔도 상당한 수준으로 현대화됐다.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기술 도입이 의심된다. 북한은 3월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4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지휘통제소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와 사격통제컴퓨터가 결합된 콘솔이 눈에 띄었다. 기존 북한 무기체계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기술 수준은 2011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빼돌린 옛 소련 RD-250 엔진의 카피판 ‘백두엔진’을 겨우 만드는 정도였다. 그런 북한이 5년 만에 완전히 현대화된 사격통제시스템으로 구동하는 대형·고추력(高推力) 미사일을 만들어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전략군을 중국의 대미전략 수행 ‘전위대’로 선언한 이후 미사일 기술도 급진전한 것이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온전히 그들만의 의지와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SM-3급 미사일 사업 예산 100억 긴급 편성
한미일 정상이 11월 13일 대북 확장억제 강화를 뼈대로 한 공동선언을 하고 며칠 뒤 북한이 고성능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그 배후엔 중국이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 이는 곧 동북아시아에 냉전체제가 새로이 구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레프 트로츠키의 말처럼,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한반도 주변에선 또다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지며 진영 간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명백한 적의를 가진 북한이 중국과 하나의 팀을 만들어 위협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팀을 짜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에 ‘SM-3급 해상 탄도탄 요격 유도탄 사업’을 위한 100억 원을 긴급 소요 형태로 편성했다. 한국이 SM-3 미사일 도입에 나선 것은 바로 이 같은 한반도 정세를 반영한 결과다.
사실 SM-3는 최근 잇달아 등장한 북한의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을 제대로 방어하기 어려운 무기다. SM-3의 최저 요격고도는 90㎞라서 30~50㎞ 고도에서 날아오는 북한 신형 단거리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 그럼에도 SM-3 도입이 추진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북한이 대형 탄도미사일을 고각 발사할 경우에도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냉전체제에서 유사시 미국으로 향하는 북한의 ICBM을 상승·중간 단계에서 요격할 능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SM-3 미사일은 적 탄도미사일이 낙하하는 과정에서 요격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패트리엇 PAC-3와 달리 중간 단계(Mid-course)에서 맞히는 고고도 요격 미사일이다. 요격 고도가 40~150㎞에 불과한 종말 단계 요격 무기와 달리, 고도 1000㎞를 가뿐히 넘겨 저궤도 위성도 맞혀 떨어뜨릴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국회와 정부는 2024년 초도함이 취역할 예정인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에 SM-3를 탑재할 계획이다. 초도함이 취역하고 완전히 전력화되기까지 2년 이상 시간이 걸리고, SM-3 미사일을 연동하는 시스템 통합 작업도 필요하다. 한국군이 SM-3를 통해 고고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기까지 앞으로 4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SM-3 미사일을 운용할 정조대왕함은 기존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급보다 성능이 향상된 모델이다. 사실상 깡통 모델인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베이스라인 7.1 시스템과 달리 정조대왕함엔 신형 이지스 베이스라인 9.C2 버전의 한국형 모델과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BMD 5.0이 탑재된다. SM-2 미사일 정도만 운용할 수 있는 세종대왕급과 달리 SM-2는 물론, SM-3와 SM-6 모두 운용 가능한 고성능 모델이다. 미군 항공기나 군함이 찍어준 표적을 미사일로 공격하고, 반대로 정조대왕함이 레이더로 찍은 표적 정보를 미군 측에 전송하는 협동 교전 능력도 갖췄다. 탄도미사일 요격 임무와 동시에 적 항공기의 대함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통합항공미사일방어(IAMD) 능력도 강점이다. 탄도미사일 대응 임무에 나설 때 별도의 호위함이 필요 없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수출 승인과 소프트웨어만 약간 개조하면 극초음속 무기를 요격할 수 있는 SM-6 블록 1B 미사일도 운용 가능하다. 이처럼 정조대왕함은 현 시점에선 부족할 것 없는 정예 이지스 구축함이다.
美·日 공조 놓쳐 ‘깡통’ 된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문제는 해군이 현재 보유한 세종대왕급 3척이다. 2008년 취역한 세종대왕함은 건조 당시 최신형 이지스 시스템인 베이스라인 7.1을 미국·일본과 공동으로 구매해 탑재했다. 하지만 미·일 양국과 달리 탄도미사일 대응을 위한 BMD 시스템을 탑재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핑크니(Pinckney, DDG-91)’부터 ‘마이클 머피(Michael Murphy, DDG-112)’까지 22척의 이지스 구축함에 BMD 시스템을 탑재했다. 일본도 아타고함과 아시가라함에 같은 체계를 적용했다. 반면 당시 한국은 이지스 BMD와 SM-3 미사일 도입이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망에 편입되는 것이라 중국 측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국내 일각의 반발로 개량을 포기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은 전투체계와 무장을 지속적으로 개량해 통합공중미사일방어(IAMD) 능력을 갖춘 고성능 전투함으로 발전했다. 이와 달리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은 이렇다 할 개량 없이 20년 전 구형 전투체계를 아직도 쓰고 있다.
BMD 능력 없는 세종대왕급 함정은 북한 탄도미사일을 ‘보는 것’만 가능하다. IAMD 능력이 없기에 탄도탄 관측을 위해서도 레이더 능력을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다른 방공함의 호위도 필요하다. 201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 주도의 성능 개량 사업에 참여했다면 척당 2억 달러(약 2700억 원) 정도 예산으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세종대왕급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너무 구형이다. 개량에는 척당 호위함 1~2척을 살 수 있는 예산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손대지 않으면 세종대왕급의 전투체계가 더 낙후돼 이번 한미일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MD 협력 참여마저 어려울 수 있다.
한미일 정상 공동선언, 의지와 실천 뒤따라야
정부는 SM-3급 미사일 조기 전력화와 세종대왕급 개량을 서둘러야 한다. 사업 착수→시스템 개량→시험 사격 완료→전력화 선언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은 일본의 아타고급 구축함 개량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정조대왕급에 SM-3을 탑재해 전력화하는 것보다 2년 이상 빨리 세종대왕급 개량으로 고고도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예산을 편성하고 내년부터 개량 사업에 착수한다면 낙후된 세종대왕급을 최신형 정조대왕급에 버금가는 고성능 이지스함으로 빠르게 전력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연합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했다. 이지스함을 포함한 육해공군의 주요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이다. 정조대왕급은 그 네트워크에 연동할 수 있는 최초 한국군 자산이 될 것이다. 세종대왕급도 이지스함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도록 같은 능력을 가진 전투함으로 개량해 연합 네트워크에 연동시켜야 한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새로운 냉전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미·일 진영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미일 정상 공동선언을 통해 천명한 의지를 이제는 실천으로 파트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 의지 표명과 실천이야말로 신냉전체제에서 자유민주 진영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6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