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만원 줄테니 모텔 잡든 하라고”…상도동 반지하 유가족 분통


동작구청장 “일단 있을 만한 곳을 알려준 것”

10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동작구청 직원들과 새마을지도자들이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2022.8.10 뉴스1

“지자체 차원의 조문도, 위로도 없었습니다. 구청장을 우연히 만났는데 ‘(주민센터) 3층 대피소에서 지내든, 하루 7만 원씩 줄 테니 모텔을 잡든 하라’고 하더군요.”

8일 폭우 속에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집이 침수되며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오지영 씨(52) 유족들은 11일 오후 발인을 마치고 상도동으로 돌아왔을 때 수해 현장을 돌아보던 박일하 동작구청장과 마주쳤다.

오 씨의 둘째 동생인 오유남 씨(48)가 유족임을 밝히자 박 구청장은 대피소와 모텔에서 지내라고 했을 뿐 뚜렷한 대책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상도동 반지하 주택 앞에서 12일 만난 고인의 첫째 동생 오유경 씨(50)는 “빈소를 지키는 중 주민센터 직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왔는데 ‘집안에 (들어찬) 물 뺀다면서 양수기는 언제 가져가느냐’는 말만 반복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9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전날 불어난 도림천으로 침수된 가게와 집을 정리하고 있다. 2022.8.9 뉴스1

● 유족들 “관악구와 너무 차이 나” 하소연

12일 둘러본 오 씨의 집은 물은 빠졌지만 옷가지와 생필품은 여전히 사방에 널려 있는 상태였다. 폭우 당시 오 씨는 같이 살던 어머니를 대피시킨 후 반려묘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집밖으로 다시 나오지 못했다. 앞 집 반지하에 살던 둘째 동생 유남 씨를 전화로 깨워 대피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변을 당했던 것. 유경 씨에 따르면 동 주민센터는 12일 유족들이 방문했을 때 관할 지역에서 폭우로 사람이 사망한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유족들은 “집이 물에 잠겨 사람이 죽었는데 관할 지자체로부터 어떤 지원책도 공식 통보받은 바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1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족들에게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을 경우 일단 있을 만한 곳을 알려준 것”이라며 “3~6개월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시 거처 약 90개를 확보했으니 조만간 수요조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폭우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밤을 새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유족들은 같은 날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장애인 등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건을 거론하면서 “너무 차이가 난다”고도 했다. 관악구 사건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살아남은 노모를 위한 임대주택 마련을 지시했고, 관계 부처가 발 빠르게 움직여 유가족이 머물 곳을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간밤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을 찾아 오세훈 서울시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2.8.9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본인보다 이웃 가족 먼저 챙기던 사람”

오 씨는 세자매 중 맏이였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반지하 방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왔다.

유족들은 고인을 “본인보다 이웃과 가족을 먼저 챙기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오 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폐지 줍는 노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음료수를 사서 건넸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지내는 동물들 밥을 챙겨주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고인의 옆 집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재숙 씨(68)도 “옆집 여성분이 참 착했는데 그렇게 돼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오 씨의 빈소를 지킨 이들은 오 씨가 젊었을 적 살뜰히 대하던 조카의 친구들이었다. 조카의 친구들은 고인이 된 오 씨를 ‘이모’라고 부르며 “어렸을 적 이모가 챙겨준 마음에 보답하고자 왔다”며 울먹였다.

유족들은 폐허처럼 변해버린 반지하에서 물건을 꺼내다 다시 한번 오열했다. 동생 유경 씨가 오 씨에게 선물한 티셔츠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 유경 씨는 “남한테 다 주기만 하고 본인에겐 뭐 하나도 아까워하며 쩔쩔매던 사람이었는데 불쌍해서 어떡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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