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에 통보한 ‘칩(chip)4’ 가입 결정 시한이 8월 말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미국의 ‘칩4’ 가입 요구는 영화 대부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같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안 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하여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기술이 정치·외교와 연계되는 ‘과학기술 안보’ 시대가 열렸다. 한국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국가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에 이어서 우리나라에 왔고, 마지막으로 일본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방문 순서대로 마지막 3국이 대만, 한국, 일본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세계 1위의 파운드리,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대만, 메모리 반도체 1위의 한국, 반도체 장비 1위의 일본은 미국이 제안한 ‘칩4(Chip 4)’ 동맹의 후보국들”이라 덧붙였다.
안 의원은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과 함께 중국을 배제하고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공급망을 만드는 것이, 미래 산업의 핵심자원인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은 ‘칩4’ 가입에 대한 결정의 순간이 임박했음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동맹 구상에서 우리를 고민에 빠트리는 것은 중국의 반발이다. 작년 우리의 반도체 수출총액 중 중국‧홍콩 비중은 60%에 이른다. 미국, 일본, 대만에 비해 우리는 결정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기도 대중 무역이 적자로 돌아서고 전체 무역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좋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서 마크 리우 TSMC 회장을 만난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TSMC는 미국으로부터 미 정부의 지원을 받되 중국 투자는 제한해야 한다는 유무형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압력은 당연히 우리 정부와 기업에게도 가해지는 중이고, ‘칩4’ 가입 요구는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이럴 때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은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설계 분야에서의 기술력은 독보적이다. 일본 역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어느 나라도 쉽게 따라잡기 힘든 최고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라고 하나, 이는 미‧일과의 ‘생태계 공생’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비유를 들자면,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와 미국은 임차인-임대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건물주라면 우리는 그 건물에 입주해 장사를 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료를 턱없이 높이거나 아예 나가라는 식으로 나오면, 우리의 장사(반도체산업)는 근본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의원은 “단기적인 수익을 염려해서 미국과 중국 시장 모두 가지려고 했다가, 장기적으로 둘 다 잃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영화 ‘대부(Godfather)’에 나오는 대사처럼, ‘칩4’는 우리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 같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우리가 ‘칩4’ 가입 요구를 거절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할 국익손실의 크기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칩4’ 가입 시 중국 수출의 감소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한 단기적인 손해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하고 그 표준과 기술자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칩4’ 가입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기적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되, 최대한 실리를 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칩4’ 가입을 비롯해서 급변하는 반도체산업의 제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양향자 의원께서 주장하셨던 국회 차원의 상설 특위와 정부의 범부처 컨트롤타워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소모적 논쟁을 일소할 수 있는 입법·행정 체계를 만들어서, 곧 들이닥칠 과학기술 안보와 경제 안보의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해야만 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그는 “미국이 우리에게 통보한 ‘칩4’ 가입 결정시한은 8월 말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더 이상 반도체 전략 수립은 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정치권은 제 역할과 기능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칩4’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으로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 중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의 류더인 회장을 만난 뒤 한국을 찾으면서 미국의 칩4 가입 압력이 더 거세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칩4와 관련된 논의를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 가입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