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광주 무등산에 이어 17일 부산 광안리 방문 사실을 공개하고 다음 행선지 ‘강원도’를 예고했다. 10일째 침묵을 이어가던 이 대표가 주말 저녁 다수 시민과 만난 사실을 공개하고 다음 행선지까지 예고하면서, ‘잠행’을 마무리하고 장기전을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징계 의결로부터 10일째인 이날까지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10시33분 페이스북에 바닷가 공원에서 80~100여명과 둘러앉은 사진 여러 장을 게시하고 “부산 광안리 수변공원에서 무려 4시간 넘게 당원들과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정치와 정당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했다”고 적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따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SNS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며 “다음 행선지는 강원도”라고 예고했다.
페이스북에 게시된 짧은 영상을 보면, 이 대표는 청중들에게 “우리 당의 가장 큰 문제는 최고위원회의가 재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당원 가입’과 ‘정치 참여’로 메시지를 통일하고 있는데, 전달 과정에서 최고위 논의가 왜 흥미롭지 않은지와 대안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경남일보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인 16일에는 경남 진주를 찾아 청년 당원 20여명과 함께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정국 현안에 대한 공개 발언을 삼가는 대신 페이스북을 통해 당원 가입 독려 메시지를 며칠 간격으로 내는 한편 광주와 경남, 부산 등 각 지역의 당원들을 만나 비공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부산 일정 전까지 이 대표가 잠행 중 유일하게 공개한 행보는 광주 무등산 등반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한번 꼭 와봐야겠다고 이야기했었다”며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중이었는데 광주 시민들께 죄송하다.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 대표는 등반 전날인 12일에는 광주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한 당원 등 2030 청년 정치인들에게 먼저 연락해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참석자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당원들과 고충을 나누며 “당원 모집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당원 확장을 통한 ‘당 체질 개혁’을 자신의 정치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는 ‘세대포위론’과 ‘서진정책’이라는 국민의힘의 두 가지 약점 보완을 대전략으로 삼고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렀고, 취임 1주년을 맞아서는 ‘당원 민주주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자기 정치를 선언했다. 지난 12일 ‘호남 청년 당원’ 방문은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행보였다.
물밑에서 당원 가입 독려와 지역 당원 접촉을 통해 자신의 고유 자산을 보존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장기전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순조로운 당무 복귀가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는만큼, ‘장기전’에는 차기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까지 포함된다.
다만 이 대표 구상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성 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오는 것이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직무대행 체제를 확정한 지난 11일 “가정을 전제로 얘기하는 게 적절치 않지만, 경찰 수사 결과가 앞으로 지도 체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될 경우 이 대표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사법 절차가 이어지더라도 정치적으로 ‘궐위’가 인정돼 전당대회가 열릴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윤리위나 ‘윤핵관’을 보면 조폭 같다”고 징계 과정을 비판하면서도 “(‘성 상납 의혹’이) 진실이라면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