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 다시 볼수 있길…전쟁 멈추게 도와주세요” 재한 우크라인의 호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재한 우크라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뉴시스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에게 온 편지입니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 모인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 집회에서 첫 발언문 낭독에 나선 연설자는 “카테르나라는 제 친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이 편지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며 친구 사흐노 카테르나 씨(28)가 보내온 편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카테르나 씨의 편지를 비롯한 이날 집회 발언자들의 발언 원문.

○ 카테르나의 편지 “내 꿈은 딸이 하늘은 왜 파란색인지 다시 묻는 날이 오는 것”

편지 낭송되는 일요일까지 우리 가족과 제가 살아있길 기도
우리 머리 위에 다시 파랗고 평화로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기다려

재한 우크라인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3월 1일 오늘은 전 세계에 봄의 첫날이지만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는 전쟁 6일째입니다. 2월 24일, 첫 번째 공격이 있었고 제 가족은 크이우를 떠나 서부 우크라이나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크이우를 떠나 약 350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흐멜느찌키 라는 도시 근처로 피난을 왔습니다. 15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써 사흘째 사이렌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고 우리는 계속 지하실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지하실에 숨어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겁에 질린 어른들의 얼굴을 보고 사이렌 굉음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극심한 공포에 웁니다. 지하실에 있기 싫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제 딸 알리사는 잠을 자다 ‘총알, 총알 날아’라고 울부짖으며 악몽에서 깨는 일이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6일째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같은 옷을 입고 자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영상통화로라도 증조할머니 로라와 할머니 타냐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 이유를 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2차 대전 때 전쟁을 이미 겪었던 82세의 증조할머니는 12월에 코로나에 걸려 2주 동안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고 코로나를 이겨냈습니다. 그런 증조할머니는 지금 제 어머니와 함께 코노톱이라는 도시의 지하실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어두워지면 집에 불을 켤 수 없고 손전등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며 걸어 다녀야 하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이가 크이우에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지금 그 곳으로 갈 수 없으며, 왜 크이우가 위험한지,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늘은 아이들이 저에게 또 어떤 질문을 할까요? 지금 제 꿈은 알리사가 예전처럼 저에게 ‘하늘이 왜 파란색’인지 물어보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제 이름은 사흐노 카테르나 입니다. 1994년생이고 우크라이나 코노톱에서 태어났습니다. 크이우에 직장을 다니며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와 우리 나라 국민을 대표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1분 1초가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미사일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제는 벨라루스에서도 날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이 전쟁을 멈추게 도와주세요!

우리 딸은 3월 9일에 3살이 됩니다. 최고의 선물은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 아이와 수천 명의 다른 아이들에게 인생 최고의 선물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은 바로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 편지가 한국의 서울에서 일요일에 열리는 집회에서 낭송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과 제가 여전히 살아 있고 핵 미사일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머리 위에 다시 파랗고 평화로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우크라이나에게 영광을!

진심을 담아.

사흐노 카테르나 올림.

○드므트로 씨의 부탁 “대신 싸워 달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한민국의 대응이 다른 국가들에게 길잡이 되길
우크라이나에서 울리는 경종은 여러분들에게 울리는 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재한 우크라인이 눈물을 닦고 있다. 서울=뉴시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드므트로라고 합니다. 전 한국에 체류중인 우크라이나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의 어린이, 노인, 남성과 여성들은 자신의 집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러시아의 가치관이 우리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민주주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이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연방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편적 가치관에 대한 공격을 했고 맹렬히 파괴하려 합니다. 오늘 러시아를 막지 않으면 내일은 주권, 영토 보전, 국제 조약, 선택의 자유 등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소중한 질서와 가치가 사라져 버린 세상이 올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신은 강하고 우리는 침략자에게 맞서 계속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민주주의 세계의 일부입니다. 대한민국은 어려운 지정학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의지와 결단력으로 성공한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으며 이에 감탄하고 정치계에서도 한국을 모범국가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습니다. 오늘도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게 모범이 되어 도덕적 나침반이 되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응이 다른 국가들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과 일시적 이득과 편의 중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무대응은 생명을 앗아가고 실질적인 대응은 생명을 구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화되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 권리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지금 같은 싸움을 하고 있으며 우방국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어떤 국가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립니다.

러시아는 협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함께 러시아를 멈추지 않으면 러시아는 스스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오늘은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젊은 얼굴들이 참으로 많이 보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용감합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지인, 친구, 정부관계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해주십시오. 전쟁을 멈추게 도와주십시오! 여러분의 목소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크라이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십시오! 정치적, 경제적 협력이라는 이유로 침략국을 도와주지 말아 주십시오! 러시아의 거짓 선전을 막아 주십시오! 러시아와 관련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보이콧해 주십시오! 우크라이나 정부와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해 주십시오!

간곡히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지금 자유를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제발 방관하지 마시고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침략자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어에는 ‘재앙은 사람들을 단결시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저항하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울리고 있는 경종이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종인지 묻지 마십시오. 바로 여러분들에게 울리는 종입니다.

○폴리나 씨의 외침 “나 혼자 이 전쟁 멈출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강하고 용감해
자유와 진실은 반드시 폭정 이겨

재한 우크라인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저는 하르키우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보호두히우’에서 온 폴리나입니다. 먼저, 이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조국을 지키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매우 빠르게 뭉친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강해질 것입니다. 거리로 나와 우크라이나를 응원해 주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힘을 써 주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과 다른 여러 나라의 국민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역사의 어떤 순간에도 자유를 포기한 적이 없었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왔습니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도네츠크와 루한시크에서 ‘친러 반군’으로 위장한 러시아인들과의 전쟁에서 14,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2월 24일부터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평화, 자유, 사람들을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고 용감합니다. 매 시간 조국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열망이 커져만 가고 있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기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아주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전 세계의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들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함께해야 합니다.

‘나는 혼자 힘으로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이 있겠나?’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 전쟁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친구, 친척, 아는 사람들에게 무도한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러시아의 거짓 선전을 막아 주십시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전쟁 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자유와 진실은 반드시 폭정을 이길 것입니다!

○드미트로 씨의 호소 “매 순간 죽어가는 이들 있기에 더 많은 도움 필요”

한국, 불과 며칠 사이 많은 기부 해줘
전 세계의 도움으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

재한 우크라인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행진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규탄하고 한국 사회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이 집회를 준비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전을 벌이고 있고, 우크라이나의 역사적인 도시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으며 전투기, 탱크 및 대포로 민간인 거주구역까지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친구와 친척이 있습니다. 일부는 비교적 덜 위험한 우크라이나 서부로 대피했고 일부는 유럽으로 피난을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투가 치열한 지역이나 이미 적군이 점령한 도시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군이나 지역 방어군에서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는 친척이 있습니다.

저는 2월 24일 이후 우리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상태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친척과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과 국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적이 우리 도시를 파괴하고 역사적 문화유산을 파괴하며 여성들을 강간하고 어린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찢어질 듯이 아프게 만듭니다.

우리 가족은 이틀 전 크이우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인들이 자행하고 있는 잔혹한 행위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라며 “짐승보다 못한 그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이길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정의는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 군대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우크라이나 국민은 마지막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매 순간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습니다. 한국국민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많은 기부를 해 주셨고, 그 기부금은 어린이와 난민을 돕고 의약품과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한 장비를 구입하는데 쓰일 것입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돈으로 방탄조끼와 장비를 구입하여 우크라이나에 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중인 방탄조끼와 군사 장비가 거의 동이 난 상태입니다. 한국도 마스크와 의료용 장갑 등 의료용품을 출발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도움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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