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다부동과 광주 망월동은 동지다. 망월동 묘역에 잠든 분들을 포함한 5·18 민주항쟁 광주 시민군은 독재자에 대항해 궐기했다.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국군은 민주와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목숨을 잃었다. 6·25전쟁 직전 치른 2대 총선에서는 여러 야권·무소속 후보가 이승만 정권에 대립해 승리했다. 대한민국은 보통선거가 없는 북한보다 진작부터 민주적인 체제였고, 민주화 역사를 통해 “용사들이 지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영남서만 전두환 호명하는 李·尹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한다.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일은 성과인 게 맞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구·경북(TK) 방문에 나선 12월 11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꺼낸 발언이다. 다부동 전투 당시 고교생이었고 11년 뒤 5·16 쿠데타를 지지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위에 앞장선 전두환 전 대통령과 최근에도 유해가 발굴되는 당시 전사자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후보의 발언은 ‘영남은 친(親)전두환’임을 전제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부산에서 전두환 옹호 논란을 일으킨 것과 닮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강원·충청·전라도에서도 같은 소리를 하고 돌아다녔어야 한다. 이 후보는 이미 대구·경북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유신·5공 시절 여당 인사였던 박창달 전 의원에게 맡긴 바 있다.이 후보는 이날 경북 봉화군에서 오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태까지 색깔이 똑같다고 빨간색(국민의힘 계열 정당)이라 찍었다. 그런데 솔직히 TK가 망했지 않느냐. 무엇을 해줬느냐”라고 말했다. 경북 북부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사석에서나 펼칠 한탄이다. 부산에 가서는 불쑥 “부산, 재미없잖아 솔직히”라더니 ‘고향’에 들러서는 지역과 그 주민을 함부로 재단했다. 지역 현실은 물론, 한국 현대사와 지역 정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낙인찍듯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농촌은 애초 ‘보수’적이었다. 첫째, 농지개혁을 거쳐 자영농으로 거듭난 이들은 반체제적 성향을 갖기 어렵다. 둘째, 6·25전쟁 당시 학살과 숙청이 남긴 상흔은 농촌 사람들의 정치적 자유를 더욱 옥죄었다. 전쟁에서 비롯된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표현처럼 ‘골로 간다’는 말 역시 경북지역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정치범이나 부역자로 몰린 주민이 산골에서 처형된 사건에서 유래한 표현인 것이다. 이 후보 고향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았다. 셋째, 새마을운동은 농촌이 체제에 내화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이들 세 가지 요인은 영남만의 것이 아니다.
영남과 호남의 정치의식은 산업화 국면에서 갈리기 시작했다. 경부선 등 기존 인프라와 미국·일본이 우방인 국제질서는 ‘경부축 산업화’를 유인 내지 강제했다. 호남 농촌 청년들은 타지로 떠나 비교적 더 많이 고생했고, 영남 농촌 청년들은 인근 도시에 취업했다. 호남 주민이 지역불평등에 분개하던 것이 당연하듯, 자녀가 인근 지역에 취업하는 것을 지켜본 영남 농촌 주민이 여당 성향으로 기우는 것도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그간 TK 도시지역의 정치 현실은 크게 달라졌다. 얼핏 국회의원 의석수만 보면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것 같지만, 이는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때문에 생긴 착시다. 정당 득표율이나 기초의원 중선거구에서는 다양성이 커져왔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난 변화다. 2010년 경북 구미시에서 기초의원을 하며 지역 정치인 최초로 박정희기념사업 예산 지원을 반대한 필자는 당시 “이것은 예고된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산업화는 현지인의 의식 변천, 타지 인구의 유입, 노동계급 형성을 낳으며 지역민의 다양한 욕구와 희망을 축적하는 법이다.
농어촌지역은 이러한 변화를 덜 겪었다. 영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남·충청·강원 지역도 마찬가지다. 여러 지역이 비슷한 현실을 경험했다. 해당 지역들이 모두 보수정당 계열에 몰표를 줬던 것도 아니고, 민주당 계열 정부 15년 동안 이 지역들에 출구가 마련됐던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 찍다가 망했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세력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힘 찍다가 망했다” 틀린 이유
그러려면 저개발 상태인 농촌에서도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농촌지역에서 댐 건설을 추진하면 댐 효용성과는 상관없이 토호·토건세력과 지방자치단체, 정치권의 공동작전으로 삽시간에 댐이 건설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테다. 그러나 경북 영양군에서는 소수 농민이 8년간 반대 투쟁을 이어가며 제도 정치권을 움직여 끝내 영양댐 건설을 민주적으로 백지화했다. 운동이 실패할 때도 잦지만 그때도 주민들은 그 지역이 정치적으로 살아 있는 곳임을 증명한다.
1998년 10월 15일 시사평론가 유시민 씨는 ‘주간동아’ 전신 ‘뉴스플러스’에 칼럼 ‘들어라! TK들아’를 발표했다. 당시 TK 지역엔 “김대중 정부가 공장을 전라도로 빼돌린다”는 마타도르가 떠돌았고, 한나라당은 이 같은 ‘지역 정서’를 이용해 장외집회를 이어갔다. 1995년 전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갇혔을 때는 그를 옹호하는 시민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유씨는 자신이 TK 출신임을 이용해 지역 주류 여론을 질타했다.
23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또 다른 문제에 대해 묻는다. “너희가 TK를 아느냐.” 5·18 민주항쟁을 헐뜯거나 전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시민은 극소수다. TK도 그렇다. 2019년 몇몇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치인이 ‘5·18 망언’을 뱉자 곧바로 같은 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이 사과했다. 그런데도 TK를 편견에 가두고 다른 지역과 갈라치기하는 이들이 있다. 지역을 ‘빨간색’이나 ‘전두환’ 따위로나 인식하는 한, 이쪽이나 저쪽이나 ‘수구반동’ 아닐까.
비슷한 사람끼리 똘똘 뭉친 것 같은 지역에도 다양성이 살아 숨 쉰다. 저마다 떨어져 따로 고생하는 듯한 지역들도 하나의 비전으로 통합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는 이미 그 길을 걸어왔다. 망한 것은 침략과 독재와 갈라치기일 뿐, 그 사이에 있었던 숱한 희생과 노고는 헛되지 않고 서로 연결돼왔다. 망월동과 다부동은 하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19호에 실렸습니다〉
김수민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