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이상 노조, 공인회계사에 감사 맡겨야|동아일보


정부 ‘노조회계 투명화’ 법개정 추진

조합원의 열람요구 거부땐 과태료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동조합은 공인회계사에게 회계감사를 맡기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 또 조합원이 재정 장부를 열람하겠다고 요구하면 노조가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이달 중순 당정 협의를 거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2일 밝혔다. 다만 정부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고용부는 ‘불합리한 노동 관행 관련 법·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노조가 다른 노조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불법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고용부는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으로 ‘조국흑서’ 필진인 김경율 회계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에서 제안한 개선안을 토대로 이달 중 노조법 등 관련 법령 개정에 착수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노조 회계에 대한 검증과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노조 조합원들이 총회에서 회계감사원을 직접 선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나 회계법인, 재무·회계 관련 업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고, 이들이 노조 임원을 겸직하는 것을 금지할 방침이다. 특히 조합원이 1000명을 넘는 노조는 공인회계사에게 회계감사를 맡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회계 서류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날 발표안에 따르면 노조는 재정 관련 장부와 서류를 5년간 보존해야 한다. 기존 ‘3년’에서 2년이 더 늘어난 것. 조합원이 재정 장부를 열람하겠다고 했을 때 노조가 거부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반드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조합원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

자문회의 전문가들은 고용부에 “노조는 자율적 단체이니 조합원에 의한 재정 운영 통제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9월까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조들이 되도록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조금 우대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다만 조합원들이 요구하거나, 횡령 배임 등 사건이 발생한 경우는 회계 공시를 강제할 방침이다.

“조합원 3분의 1 요구땐 회계감사 받고 결과 공개해야”



고용부, 노조법 개정 추진





특정노조 가입강요 등 처벌규정 신설
노사 부조리 신고 한달새 301건

노조 회계 투명화 방안과 관련해 자문회의 단장인 김 회계사는 “현행 소득세법 시행령상 지정기부금단체 중 회계 공시를 하지 않는 건 사실상 노조가 유일하다”며 “협동조합조차 공시 의무가 있는데 형평성 차원에서도 노조에 공시 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추진한다. 2011년 복수 노조가 허용된 후 노조끼리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조가 다른 노조나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또 노조가 사용자에게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거나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강요하는 사건도 빈발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이런 행위를 처벌하기 어려웠다. 이에 노조법을 개정해 이 같은 불법 행위를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노조 간에 △특정 노조 가입을 강요하거나 탈퇴를 방해하는 행위 △다른 노조 조합원이나 노동자에게 폭행·협박을 해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교섭대표 노조가 소수 노조의 교섭 요구를 이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 고용부의 계획이다. 지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가 산하 포스코지회의 탈퇴를 방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조가 사용자에게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거나 폭행 협박으로 업무를 방해하고, 소속 조합원이 아닌 근로자의 채용 및 임금에 관한 차별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도 처벌할 계획이다.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나 월례비 요구가 이에 해당한다.

고용부가 1월 26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는 지난달 28일까지 총 30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250건은 공짜 야근(야근수당 미지급), 임금 체불,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개인적인 근로관계 관련 신고였다. 나머지 51건은 노조 재정 비리, 조합원 괴롭힘,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 등 집단 노사관계 관련이었다. 신고 사례에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연장·야간 근무수당을 법적 기준보다 적게 지급하거나, 노조 집행부가 조합비 약 5억 원을 횡령했는데 의혹을 제기한 조합원을 제명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계는 정부의 개선안에 대해 “불합리한 것은 노동 관행이 아닌 정부의 노동정책”이라며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일부 노조의 일탈 사례를 꼬투리 잡아 전체 노조를 부패 세력으로 매도한다”며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선 구색만 맞추고 노조에만 법과 원칙을 들이댄다”고 비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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