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폭로는 계속돼야”…다시 불붙는 ‘문학계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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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시 ‘괴물’로 ‘미투(나도 당했다)’ 밝혀

여성문인 연대의 기록 ‘참고문헌 없음’에 관심 증가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me too)’ 캠페인에 동참하는 대구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성평등과 평화로 향하는 꽃길을 걸어가라는 의미를 담아 흰 장미를 검찰청 입구에 뿌리는 모습. © News1

2016년 가을 문화예술계를 뒤흔든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운동이 문학계에서 다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의 형태로 재개될 조짐이다.

한 원로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내용에 ‘me too’를 사이사이에 넣은 최영미 시인의 풍자시가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퍼져나가며 문단의 어두운 일면에 대한 ‘폭로’의 불을 다시 댕긴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의 정치 이슈에 묻혀 구체적인 방지책을 내놓는데까지 이뤄지지 못한 성추문 고발사태가 이번에는 미완의 운동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영미 시인.© News1

◇최영미 시인, 시 ‘괴물’로 ‘미투(나도 당했다)’ 밝혀

7일 문단에 따르면 최영미 시인은 잡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청탁을 받고 문단 뒤풀이 등에서 성추행을 저지르는 한 시인을 묘사한 시 ‘괴물’을 발표했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으로 시작해 문단 모임에서 겪은 성추행을 고발했다.

이 시가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최 시인은 지난 6일 오후 JTBC 뉴스에 출연해 자신의 시에 대해 “(시에 언급된) 그는 상습범이다. 한두 번이 아니라 정말 여러 차례, 제가 문단 초기에 데뷔할 때 여러 차례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저희가 목격했고 혹은 제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이어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술자리든 아니든 간에 그것도 거절할 때도 세련되게 거절하지 못하고 좀 거칠게 거절하면 뒤에 그들(유명 남성문인들)은 복수를 한다”며 “메이저 문예 잡지의 편집위원들이 바로 그들인데 그들이 시 편집 회의를 하면서 그런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한 그 여성 문인에게 시 청탁을 하지 않고, 작품집이 나와도 평 한 줄 써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그녀는 작가로서의 생명이 거의 끝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은 문단에서 자기의 위치를 점하지 못했던 여성 피해자들이 있는가”는 질문에 최 시인은 “여성 피해자들이 아주 많다. 특히 ‘독신’의 ‘젊은 여성들’이 타깃”이라고 대답했다.

시가 퍼져나가면서 많은 언론과 누리꾼이 한 원로시인을 지목하자 해당 시인은 한 언론에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에 앞서 ‘참고 문헌 없음’이 있었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미국 영화계에서 여배우들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유럽과 중국으로까지 확산되어 관심을 모아오던 이 운동은 최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검찰내 성추행 폭로가 더해지면서 “미투운동이 검찰과 정치계 등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며 큰 관심을 모았다.

최영미 시인의 ‘미투’ 등에 앞서서 이미 여성작가들은 문단 남성 문인의 잘못된 행태를 고발하고 성폭력 피해자와 이들을 응원해왔다. 봄알람과 여성 문인들이 문단 내 성폭력과 관련된 싸움을 기록하고 그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 지난해 출간한 문집 ‘참고문헌 없음’이 그 예다. 많은 여성 문인들이 글을 기부했고 책의 제작비, 유통비를 제외한 모든 인세와 수익은 문단 내 성폭력 관련 법률 소송 비용과 의료비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없음’은 지난 1일 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내용을 인용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의 문단 성폭력 고발 사태가 예술학교 학생, 일반인 문학지망생 등이 당한 성폭력 사례였다면 ‘참고문헌 없음’은 여성 문인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담았다. 문학계에 따르면 여성 문인에 대한 성차별과 박해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공식 등단한 일제강점기 소설가인 김명순(1896~1951)까지 올라간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김명순은 김동인, 김기진, 전영택 등의 당대의 유명 남성문인들에 의해 ‘퇴폐여성’으로 낙인찍히며 문단에서 사장되고 만다.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가 방송된 후 이혜미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Metoo 는 시대의 모멸을 온몸으로 통과한 여성들의 숨비소리 같은 것”이라면서 “문단에 상습적인 성희롱과 여성 작가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넘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것이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 나는 #en시인 과 함께 방송을 진행하며 그의 여러 우스운 만행들을 접했고, ‘en 주니어’들이 넘쳐나는 한국 문단에서 오래 성희롱을 겪어왔다”고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황정산 시인 페이스북 캡처© News1

◇“폭로는 계속되어야 한다”…미투운동 지지하나 우려도

2016년 한 문예지에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한 김현 시인은 성차별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으려고 해도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을 수는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데 대해 “혐오나 소수자 문제가 늘 거대한 것 때문에 뒷전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도 이 지경이라면 순서를 좀 바꾸면 안되나. 조개부터 줍고 해일을 대비하면 안되나”며 미투운동을 지지했다. 일각에서 말하듯 개혁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거나 물타기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원로시인인 문정희 시인 역시 문학사상 2018년 1월호에 실은 ‘이달의 말’을 통해 “침묵은 깨어져야 한다”면서 미투운동을 지지했다. 문 시인은 “한국사회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성희롱과 성폭력의 문제를 중요한 이슈의 하나로 거론하고 있다. 특히 한국문단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문제로 계속 뜨거울 것”면서 “사방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아프고 경쾌하다”고 새로운 움직임을 반겼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영미 시인의 시와 인터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최영미 시인이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한 개인(문인)을 곧바로 어떤 구조(문단권력)로 치환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공지영 소설가는 “검찰이나 이런 곳의 피해와 다르다. 문단은 모두 독립적인 구조”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황정산 시인도 자신의 SNS에 “(최영미 시인의) 문단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용기있는 고발에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하지만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설명해서 문단에 대한 오해를 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성희롱성 발언과 행위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청탁과 작품조망이 모두 그와 관련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뛰어난 시인이 성희롱을 참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문단에서 사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현 시인은 미투운동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에 그친다면 안될 것”이라면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곳, 혹은 사회문화와 정치의 구조적인 면들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히 죄를 묻는 게 아니라 구조를 개선하는 것까지 포함시키면 미투운동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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