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12·3 비상계엄령 이후 극심한 혼란의 정치 환경과 사회 갈등이 외형으로는 일단 정리가 됐다. 지난 6개월 동안 국민들은 고생이 많았다. 불안한 정국 상황으로 인한 국제 신인도는 추락하고 경제가 바닥을 치도록 떨어졌다.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탄핵 결의가 과연 이루어질까? 헌재에서 탄핵이 수용되어 파면이 선고될 것인가?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결과라도 과연 나누어진 사회의 극단적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까? 나라를 걱정하는 모두에게 떨칠 수 없는 불안이었다.
그랬던 염려와 불안이 하나둘 단계를 거치면서 생각보다는 훨씬 빠르게 봉합됐고,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집단 지성은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민주주의의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임을 느끼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들었다. 6·3 선거가 끝나자 지지자들의 감정은 아직 다 수습이 되지 않았지만, 각 당의 후보자들이 승복을 선언하고 선출된 새 대통령을 축하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는 기쁨마저 들었다.
탄핵이 인용된 후 여론 조사는 7:3에 달하는 차이의 기울기를 보였고, 대선이 진행되는 동안은 6:4로 그 격차를 보여 결과가 거의 예측되어질 것 같았던 것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선자의 득표율이 50%에 조금 못 미치는 것과 상대 후보자들의 합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것은 정권 교체와 새 정부의 출발을 원한 국민들의 뜻이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이 오만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려는 유권자들의 함의가 담겨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절반 이상의 전폭 지지의 결과가 나왔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의 독재 정치가 가능했을 것이지만, 새로운 정부의 문은 열어주면서 새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겸손히 대화를 통한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들의 합의였고,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로 보여진다.
이제 새롭게 출발한 정부와 이재명 대통령 앞에 주어진 과제가 엄청 크다. 총체적 난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묘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취임 후 들어간 대통령실이 황무한 무덤 같은 빈 집이었다고 한 것이 새 정부의 출발점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할 정도로 극히 실망스러운 제로 포인트이다. 균형 있는 국제 외교의 복원, G20의 경제 대국의 위상 회복, 국내 사회적 갈등 치유,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대결 국면을 다시 평화의 지대로 안착 등은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난제들일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 안심도 되고 기대를 가지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국민을 주인으로 여기고 ‘국민 주권 정부’라는 별칭을 세울 만큼, 새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대통합하는 머슴이 되겠다고 한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리더십의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통합이란 산술적인 절반과 절반을 물리적으로 뭉치는 것은 아니다. 갈등 도피적인 어중간한 정책으로 실패했었던 몇몇 이전 정부를 답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새 정부와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들의 언행이 국민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감동 정치를 기대한다. 그래서 상호 갈등이 자연스럽게 녹아져 통합되게 이끌어 가길 기대한다. 정치는 기계나 자연물과의 대화가 아니고 사람과 하는 관계 대화이기 때문에, 법과 힘으로가 아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덕치가 동반돼야 한다. 측은지심의 인이 필요하다. 수오지심의 의가 필요하다. 사양지심의 예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비지심의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는 공감 능력의 사랑이고, 둘째는 부끄러움을 아는 솔직함이고, 셋째는 양보할 줄 아는 겸손함이고, 마지막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들에게 이런 온전한 덕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허황하고 무모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 되게 해달라는 두리뭉실한 기도가 아닌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진심 원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롬 13:1~2)는 강단의 설교가 가능한 우리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