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빌리코리아 기도큰모임, “광복 80년, 한국교회의 과거와 미래를 잇다” 주제로

2025 쥬빌리코리아(이하 쥬빌리) 기도큰모임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6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개최됐다.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는 한국교회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연합, 다가올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이다. 2004년 이후 1,060차 연속 개최돼 왔으며, 2025년 5월 현재 통일선교단체와 국내 30개, 해외 23개 지역에서 지속적인 통일기도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모임은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가 2019년부터 7년 동안 추진해 온 여호수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새롭게 진행할 느헤미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의미로 마련했으며, ‘광복 80년’을 기념해 회개 및 다음세대 신앙 유산을 전수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오전 한경직기념관 김덕윤예배실에서 열린 통일 컨퍼런스는 국내지역협의회 의장 이종한 목사(제주 아름다운교회 담임)의 개회기도, 상임대표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의 환영사, 숭실대 이윤재 총장의 축사, 초대상임위원장 이상숙 권사(성공회대학교 사회학박사)의 격려사에 이어 이덕주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의 주제발제, 하충엽 교수(숭실대 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와 하광민 교수(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의 지정토론, 종합토론, 사무총장 오상훈 목사의 광고 및 인사, 상임고문 정성진 목사의 총평 및 기도 순으로 진행됐다.
박동찬 목사는 “우리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 상황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행동하는 신앙으로 그것을 돌파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유산으로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보다 훨씬 잔혹하고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도 ‘민족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호조운동을 벌였던 손정도 목사님의 신앙 유산을 발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 이후 한반도 신학 모색: 손정도 목사를 중심으로’라는 발제를 맡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이덕주 박사(감신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장로교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의 부흥운동과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의 순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으나, 감리교 남산현교회 민족운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왔다”며, 남산현교회가 배출한 대표적 민족운동가로 꼽힌 손정도 목사를 중심으로 알제강점기 기독교인의 민족운동에 관해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손정도 목사는 평범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기독교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상투를 자르고 사당을 부수는 개혁적인 행동으로 기독교를 수용했다. 숭실중학교 시절 경험한 대부흥운동을 통해 경건과 성결의 삶을 실천했고, ‘부흥 목사’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어 1910-1920년대 한국 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실천적 신앙인이었다.
이덕주 박사는 “손정도 목사는 사도행전 1장 6-8절 말씀을 근거로 오순절 성령운동, 부흥운동을 통해 전도자들이 국내외 파송돼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국권 회복의 지름길이라 여겼다. 그 자신이 국내 목회를 통해 부흥 목사로 명성을 떨쳤고, 직접 해외 선교사를 지원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의 사역을 담당했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과 민족운동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신앙은 민족운동의 근거이자 운동력이었고, 민족운동은 신앙의 표현이자 결과였다”고 했다.
이 박사는 “무엇보다 그는 이념, 노선, 지역이 다른 이들이과 함께 서로를 돕는 ‘호조(互助)운동’을 펼쳤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 진영 사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중립과 중재의 길을 취하려 했다. 그의 평화와 공존의 의지는 기독교와 상극인 공산주의까지 포용해 ‘기독교 사회주의’ 이념 형성으로 발전됐다. 그는 그 실천의 장으로 농민호조사를 설립해 이상촌 운동을 추진하며, 이념과 종파를 초월해 민족주의자, 공산주의 독립운동 세력의 연대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 큰 약점이 바로 ‘부익부 빈익빈’인데, 이를 공산주의는 자산을 몰수해 강제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기독교 사회주의는 자발적으로 내 것까지 나누는 것이다. 비록 이론적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으나, 이러한 기독교 사회주의 개념이야말로 한반도 현대사를 갈등과 분쟁으로 몰아넣은 자본주의·사회주의 이념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으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특히 손정도 목사가 길림에서 목회하며 본격적으로 기독교 사회주의 이론을 수립하고 그 실천의 장으로 농민호조사를 설립하여 이상촌 운동을 추진한 것, 이념과 종파를 초월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독립운동 세력의 연대를 추진한 것, 무엇보다 김일성 주석의 손정도 목사에 대한 우호적 ‘회고와 기록’은 통일의 추진과 정착 과정에서 남북 화해와 교류에 효과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2003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손정도 목사 기념 남북학술대회’에서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지정토론을 맡은 하충엽 교수는 “이덕주 교수가 ‘자유와 평화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꼽았다. 감리교 신학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장로교보다 강조하는 성향이 있다”고 언급한 후,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면 먼저 공격을 받는 민감성이 있다. 저는 서울 영락교회에서 목회를 오래 했는데, 설립자 한경직 목사가 1949년 9월 윤하영 목사와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설립할 때 정당 이름에 ‘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6.25를 거치고 남북 분단이 오래되면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굉장히 한국교회에서 오염됐다”고 했다.
하 교수는 “지금 영락교회에서 사회주의를 언급하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발제자가 사용한 언어에 대한 해석을 정확하게 간파해야 우리가 편안하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며 “손정도 목사가 농민호조사를 시도했던 것은 간도 지방에 있는 조선 사람들의 궁핍한 고된 생활을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체험과 서로의 소유를 공유한 오순절 성령공동체의 발현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덕주 교수는 이를 기독교 사회주의로 해석한 것이므로,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확연히 다른 것이라고 보았다”고 했다.
그는 또 “아울러 21세기에 ‘민족통일’은 다소 닫힌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내 이주민이 300만 명이 넘는 다문화 사회 속에 ‘민족과 통일에 관한 주제를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교회가 한국 사회의 치유와 갱신,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는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덕주 교수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내용은 좋은데, 단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지적이 이전에도 많았다. ‘한국에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질문해 주셨는데, 기독교 사회주의는 원래 존재하고 있던 개념으로 영국에서 나왔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북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면서도 “사회주의 개념에 대한 콤플렉스, 뿌리 깊은 반공주의를 헐어내지 못하면 남북은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 사회주의와 대비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자본주의다. 기독교 사회주의와 기독교 자본주의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는 자기가 벌어서 자기만 쓰는 이른 바 천박한 자본주의가 아닌, 자신의 소득을 이웃과 나누는 청교도 윤리에 기반한 건강한 자본주의다. 존 웨슬리는 ‘경제의 3원칙’으로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아껴 쓰고, 할 수 있는 대로 나누라’고 했다. 이것이 기독교 자본주의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회주의와 기독교 자본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다. 그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기독교 사회주의와 기독교 자본주의가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하광민 교수는 “기독의 사회주의라는 손정도 목사의 표현은 그리스도가 추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성령공동체가 맞고, 성령공동체는 호조운동에서 보듯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확장성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나? 호조운동도 모든 이들을 다 포용했지만, 비기독교인들이 들어오고 나서 이후에는 실패했다. 기독교 공동체가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성령 안에서 이어지지 않을 때에는 깨지기 때문에 기독의 사회주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기독교 사회주의가 이보다 확장된 의미에서 ‘기독교가 발전시키는 사회주의’로 이해됐다”고 답했다.

이어 한경직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기도큰모임 본행사는 사무총장 오성훈 목사의 사회, 대표회장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담임)의 환영사, 기도큰모임 준비위원장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의 개회사와 개회선언, 쥬빌리 서울목요모임 찬양팀의 경배와 찬양, 부상임위원장 이병철 목사(주향교회 담임)의 대표기도, 포타미션 예술영역 디렉터이자 싱어송라이터 김한별 전도사의 청년 간증, 송솔나무 이사장의 플루트 연주, 사회자의 성경봉독, 상임고문 정성진 목사(크리스로드 이사장)의 설교, 합심기도로 진행됐다.
오정현 목사는 “한국의 기독교 대학이 설립 당시의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는데, 숭실대는 기독교 정체성을 강력하게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도 한국교회와 함께 가는 정체성이 있길 바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영적인 힘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의 방향이 정해질 줄 믿는다. 쥬빌리 큰기도모임을 통해 평양이 회복되고, 평양에 무너진 2,850여 개 교회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환영사했다.
박동찬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이루실 때는 반드시 기도의 사람을 세우시고 그 기도에 따라 역사하셨다. 오늘 이렇게 기도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것은 귀한 복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획하신 놀라운 일이 이뤄질 것이다. 은혜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또 함께하실 줄 믿는다”며 개회사하고 개회를 선포했다.
‘이루라! 복음통일을’ 이라는 제목(수24:14)으로 설교를 전한 정성진 목사는 “쥬빌리는 7개년 계획으로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해 왔으며, 올해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나라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피 흘림이 없는 복음통일을 위해 달려온 쥬빌리는 기도의 사명을 끝까지 다해야 한다. 사무엘 선지자와 같이 우리도 통일을 위한 기도를 쉬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고, 통일의 날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끈기 있게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통일을 허락하실 줄 믿는다”고 했다.
이어 유대영 목사가 ‘영적 회개와 갈등 극복을 위해’ , 송신복 목사가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 김현중 목사가 ‘청년세대와 세계선교를 위한 위해’ 합심으로 기도한 후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담임)의 축도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오후 12시부터 2시, 5시 30분부터 6시까지 ‘통일선교 박람회’가 한경직기념관 앞마당에서 진행됐으며, 약 20개 단체가 참여해 사역을 소개하고 성도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측은 이날 참석자들을 위해 한경직기념관 인근에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오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