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의 눈물이 증언하는 진짜 정치, 김문수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155] 문둥이라 불린 나를 안아준 사람


▲한센인 강창모 씨 찬조 연설 모습. ⓒ유튜브

▲한센인 강창모 씨 찬조 연설 모습. ⓒ유튜브


“저는 한센인입니다. 문둥이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2025년 대한민국 대선을 앞두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터져 나온 이 한마디는 그 어떤 정치 수사보다 강렬하고 진실했다. 경기도 연천군 ‘다운마을’에 사는 강창모 씨의 찬조 연설은 말이 아닌 삶으로써의 증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가장 외면당한 이름, 한센인

한센병은 단지 의학적 질환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병은 ‘죽음보다 깊은 추방’을 의미해 왔다. 돌을 맞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같이 밥을 먹지 않으려 하고, 아이들은 같은 반에 두지 않겠다는 요구를 받는다. 한센인들은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름이 아니라 낙인으로 불렸다.

강창모 씨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40년 전, 연천군 청산면 외곽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그 마을이 지금의 ‘다운마을’이다. 그곳은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은신처’였고, 대한민국 안의 또 다른 ‘국외’였다.

처음에는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IMF 이후에는 염색공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고발을 당했고, 징역형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전과 28범이라는 무거운 낙인이 새겨진 주민도 있었다.

사회의 눈 밖에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벌이었다. 더구나 주민 대부분은 한글을 읽지 못했다. 통장을 만들 수 없었고, 병원에서도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손자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해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문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했고, ‘말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았다.

그때 그곳에 찾아온 사람, 김문수

이 절망의 땅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김문수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대부분 정치인이 그렇듯, 그냥 지나가는 ‘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을 붙잡았다.

무허가 건물 문제를 해결했다.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경기도와 연천군, 정부를 연결했다. 그리고 ‘행복학습관’을 세웠다. 이 학습관에서 그들은 비로소 한글을 배웠다. 그날, 그들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썼다. 은행 창구에서 사인을 할 수 있었고, 손자의 책을 읽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한글을 깨우친 날, 김문수 지사는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날, 그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주민들과 함께 울었다. 그 눈물은 동정이 아니라, 함께한 고통과 회복의 눈물이었다.

이후 마을의 이름도 바뀌었다. ‘청산마을’이라는 낙인을 벗고, 좋은 일들이 다 오는 곳이라는 의미의 ‘다운마을’이 되었다. 그 이름은 단지 행정상 변경이 아니었다. 이들은 마침내 ‘존재로서의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선출 후인 지난 5월 4일 첫 일정으로 포천 한센인 마을을 찾아간 김문수 후보. ⓒ국민의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선출 후인 지난 5월 4일 첫 일정으로 포천 한센인 마을을 찾아간 김문수 후보. ⓒ국민의힘


정치가 아닌 인생으로 답한 사람

김문수는 정치인이라는 직함보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약속을 지켰다. 퇴임 후, 그는 전라남도 고흥의 한센병원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갔다. 무려 한 달간 병동에 머물며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을 닦아주고, 밥을 떠먹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한센인을 찾아간 이후 처음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문수는 포천의 또 다른 한센인 거주지 ‘장자마을’에도 약속을 지키러 찾아갔다. 대통령 후보가 되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그는 실제로 지켰다. 그는 자리를 내려놓은 뒤에도 ‘행정’이 아니라 ‘삶’으로 마을에 응답했다. 그 진심은 말이 아닌 ‘기억’과 ‘발걸음’으로 드러났다.

진짜 서민, 진짜 정치

강창모 씨는 연설 끝부분에 이렇게 말했다. “김문수 후보는 서민적인 사람이 아니라, 서민 그 자체입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구로공단에서 7년을 일한 노동자였고,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서울 봉천동 작은 아파트 하나가 전 재산인 사람이다.

지금의 정치가 잃어버린 ‘현장’과 ‘손의 노동’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인력시장과 노숙인 쉼터, 철책선과 외딴섬까지 그는 걸어 다녔다. 사진을 위한 포즈가 아닌, 민심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가 말하는 정치란 듣는 것이고, 마주하는 것이며, 끝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인 이전에 ‘증인’이다. 한 나라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눈을 맞춘 사람.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 우리는 감히 ‘지도자’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 한 표는, 증언이다

강창모 씨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김문수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리며,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그 한 표는 정치인의 승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언이다. 그리고 진심에 대한 응답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묻고 있다. ‘누가 우리를 기억하는가?’

김문수라는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희망의 서사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름에서 가장 따뜻한 손길을 보낸 사람, 그가 바로 지금 우리가 기대야 할 진짜 정치인의 얼굴이다.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박사

심리학 박사로 서울 한영신대와 고려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열등감을 도구로 쓰신 예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 서울 중랑구 은혜제일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칼럼은 신앙과 심리학의 결합된 통찰력을 통해 사회, 심리, 그리고 신앙의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로 독자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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