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와 ‘기회주의’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철새는 본래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새를 뜻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속이나 입장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정당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철새 정치인’이라고, 직장에서는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자주 이직하는 사람을 ‘직장 철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개 신념이나 일관성이 부족하고,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교회를 옮겨 다니는 이른바 ‘철새 신자’들이 존재합니다.
‘기회주의’란 원칙이나 도덕, 공동체의 가치를 무시하고 오직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만을 좇는 태도나 행동을 말합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이나 행동을 바꾸며, 도덕적 기준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신념이나 일관성이 부족하고, 단기적인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웁니다. ‘철새’는 자주 입장을 바꾸는 행동 유형을, ‘기회주의자’는 유리한 조건만을 탐색하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필자는 수십년간 목회 활동을 하며 이러한 신앙 태도를 가진 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지인 중에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여러 번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처음 교회에 등록할 때는 “이 교회는 최고의 목사님이 있는 최고의 공동체”라며 열렬히 칭찬하고, 모든 일에 열심을 봉사하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불평을 시작하셨고, 결국 또 다른 교회로 옮기셨습니다.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 후, 한 집사님 부부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 온 동네에서 여러 교회를 방문해 보았지만 마땅한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 후 등록을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교회로 떠나셨습니다. 이처럼 ‘철새 신자’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왜 이런 신앙 태도가 생길까요? 물론 교회 구성원들의 문제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목회자의 설교나 행정, 재정, 윤리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필자는 한 가지 속담을 떠올렸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 이 말은 결국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자신에게 해로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날 때 그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과 불만의 형태로 말합니다. 순간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이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사회와 가정에 퍼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는 교회 성장과 부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요즘 개척교회 목사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도가 천지창조보다 어렵습니다.” “전도만 된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시고 싶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말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100% 기존 신자들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복음 7:1–5)
결론
몇 년 전,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자매와 상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주일예배 때 설교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졸리기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불만도 함께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자매에게 3일간 성경공부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자매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월요일, 전화 통화 중 자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 주일예배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교회나 목사님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지금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신앙 유형이 존재합니다. 길가 같은 마음, 돌밭 같은 마음,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가진 신자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자,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시 믿다가 떠나는 자,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쾌락에 눌려 결실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철새 신자’와 ‘기회주의 신자’는 바로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며,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태복음 13:23)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며, 본성적으로는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깨달은 자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 8:15) 이러한 성도들이 바로 성품과 본질이 변화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