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칼럼] 정명훈 선생이 스칼라 감독에 선임되기까지의 기도 과정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도의 능력


▲정명훈 선생(왼쪽)과 한평우 목사(오른쪽).

▲정명훈 선생(왼쪽)과 한평우 목사(오른쪽).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에 대해 수많은 설교를 듣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만나고 인사를 나눌 때도 수시로 언급합니다. “기도해 주세요”라고… 그러나 정작 응답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응답이 없거나, 기도에 대해 가볍게 여겨 액세서리 정도로 사용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저는 며칠 전 소름 돋는 응답을 경험하고 이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글을 씁니다.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선생은 1983년부터 로마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로마에 둥지를 튼 목적이 “이태리 파스타가 맛있기 때문”이라 하여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도, 약관 35세에 바스티유에 감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당시 바스티유의 사장은 정 선생을 천재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바스티유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염려하였는데, 정 선생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말끔히 잠재우고 정상화했습니다. 그때 도밍고와 녹음한 오텔로는 명반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무난히 연장 계약을 한 후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억울하게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스칼라 극장.

▲스칼라 극장.


그때부터 기도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 세계를 약간만이라도 알았다면 기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식이 담대하다고, 정 선생이 세계 최고의 극장인 스칼라에서 연주할 때 표를 주어 좋은 자리에서 오페라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스칼라의 로얄박스에 앉아, ‘이 자리에 그 유명한 마리아 칼라스와 그의 연인 선박왕 오나시스가 함께 앉았겠다’고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 선생을 이 스칼라 극장의 감독으로 세워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2, 30년 동안 계속 기도했다 싶습니다.

그런데 스칼라의 감독이 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곳을 방문하여 관람한 후 “이 극장은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메카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측대로 세계적 오페라의 전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247년이 지난 현재까지 외국인이 감독으로 내정된 것은 유대인 <바렌보임>이 유일했습니다. 그만큼 국수주의가 대단했고, 더 나아가서 이태리에서는 세계적 지휘자들이 시루에 콩나물이 올라오듯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토스카니니, 세라핀, 줄리니, 시노폴리, 아바도, 무티, 등등… 그런 지휘자가 한 나라에서 한 사람만 나와도 대단한 일인데 말입니다.


▲스칼라 극장 내부.

▲스칼라 극장 내부.


그러니 동양인으로 스칼라의 감독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스칼라 극장은 이탈리아 클래식의 유일한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겁도 없이 정 선생님을 감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니, 이런 저를 주변에서는 실없는 사람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엘리야가 비 오기를 기도하면서 하인에게 “바다 쪽에 구름이 있나 보라”고 했으나 구름이 없다는 보고를 받자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듯이,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4-5년 전 정 감독과 친분이 있는 프랑스 사람이 스칼라 사장으로 부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쪽 바다 위로 구름 한 조각이 보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칼라의 사장이 되기 전에는 도와 달라고 온갖 다정한 척을 하더니, 막상 사장이 되자 자기 살 궁리만 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래 전에 정 지휘자를 감독으로 내정해 달라고 전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사인을 해 담당자에게 올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정 선생은 단원들을 사랑하고 진정 스칼라 극장의 발전을 위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칼라 감독의 자리란 결코 쉽게 허락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태리 클래식의 최고봉으로, 모든 지휘자가 그 자리에 군침을 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믿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간단한 일이라고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에 서쪽 바다에 손바닥 만한 구름이 보인다고 사환이 보고하였듯이, 그런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명훈 선생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2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칼라에 일찍이 한 번도 없었던 명예 감독의 자리를 만들어 그에게 공로패를 수여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통해 기도가 힘을 얻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페니체 극장.

▲페니체 극장.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 내부.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 내부.


정 선생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는데, 저는 강조하였습니다. “기도하세요, 이제는 감독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7년 동안 깊은 교제를 나누며 많은 연주를 했던, 페니체 극장 사장이 스칼라 사장으로 영전하는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그 사장은 정 감독을 최고의 지휘자라고 믿고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정 감독이 한국으로 연주하러 갈 때도 따라갈 정도의 열성팬입니다. 우리같이 클래식에 일천한 사람은 모르나,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아온 사장은 정 감독의 음악적 천재성과 깊이, 그리고 해석에 대해 감탄하는 전문가입니다. 정 감독을 존경하는 사장이 스칼라 사장으로 영전함으로, 서쪽 바다에 떠 있는 손바닥 만한 구름이 비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가느다란 소망을 붙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태리 정부는 보수성 강한 멜라니가 총리로 있고, 스칼라 극장을 움직이는 일곱 명의 이사회 역시 보수성이 강한 분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밀라노의 음악적 상류 가정 출신이요, 현대 음악에 재능이 있고, 암스텔담 왕립 콘체르트 감독인 다니엘 가티(Daniele Gatti)를 감독으로 점찍고 있었습니다. 사장은 평생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었기에, 강한 리더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독이 아니더라도 감독 같이 일하게 할 테니, 페니체 극장에서처럼 당신 마음껏 활동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이사회의 승인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정 선생에게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건 안 된다고 사장에게 분명하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70이 넘은 정 선생에게 감독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 또 작은 구름이 서쪽 바다에 떠올랐는데, 바로 오케스트라 전 대원들이 정 지휘자에 대한 의향을 물었는데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대신 가티에 대해서는 모두가 반대를 표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고, 정 선생의 지도력과 품성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사회의 허락이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이사회가 모인 가운데 사장이 설명하고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전화로 받고 주일에 기도했고, 월요일에도 일찍 일어나 기도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이왕이면 이사회에서 100% 찬성으로 마무리하여 주옵소서”라고…


▲스칼라 정면에 붙은 정명훈 선생 공연 포스터.

▲스칼라 정면에 붙은 정명훈 선생 공연 포스터.


드디어 이사회가 모였는데, 이사장은 밀라노의 시장이었고, 이사들은 교육감,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사람, 정부 부처를 대표하는 사람, 상공회의소 대표, 이태리의 대형 은행 대표, 보험사 대표, 이태리 전력회사 사장입니다. 이들은 모두 재정적으로 큰 후원단체의 장들이었기에 이들의 의견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회 회장인 밀라노 시장은 스칼라 사장의 정명훈 선생에 대한 보고를 받고는, “사장이 추천하였으니 찬성한다”고 일사천리로 그 두려운 관문을 너무 쉽게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의 역사가 아닐까요?

정명훈 지휘자를 제일 먼저 환영한 사람은 문화부 차관보 지안 마르코 마치인데, 그는 정 지휘자가 이탈리아와 오랫동안 인연을 가졌고, 진정한 문화대사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회에서 정 선생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정 선생의 연주를 밀라노 청중들이 매우 사랑한다는 것이고(연주 시 표가 매진됨), 다양한 레퍼토리와 스칼라 극장을 국제화하려는 비전과 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초조하게 이사회의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전 10시경 정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이사회에서 100% 찬성이랍니다. 사장이 흥분하여 방금 전화했어요. 할렐루야! 이 모두가 목사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전화를 받고 크게 흥분했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이뤄 달라고 기도하고는, 막상 이뤄졌다는 전화를 받으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3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달라고 기도했던 엘리야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가능성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해도 믿음으로 계속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네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끈질긴 기도야말로 응답의 지름길이요, 승리의 첩경입니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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