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연구가 권주혁 장로 특별기고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모 대성당
‘Deus Lo Vult’ 문구 써있다 설명
세밀하게 살펴봐도, 보이지 않아
인방 아닌 성문에 조그맣게 쓰여
교황들 보통 죽으면 바티칸 성당
지하 묻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예외적으로, 성모 대성당 안장돼
‘Deus Lo Vult’ 때문에 방문 기억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을 떠나자, 4월 26일 오전 바티칸에서 장례미사를 하였다. 오후에 바티칸을 출발한 운구차와 행렬은 시속 14km로 천천히 움직이며 로마 시내를 흐르는 티베르 강을 지나 베네치아 광장,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앞을 통해 시내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있는 장지(葬地) ‘산타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에 도착했다.
짧은 거리이지만 연도에 나온 많은 시민들이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천천히 이동함으로써 이동에 약 30분이 소요된 것이다. 이탈리아어 마조레(Maggiore)는 ‘중요·중심’이라는 뜻으로, 이 성당은 우리말로 하자면 ‘성모 대성당’이다.
1078년 이슬람 세력(셀주크 튀르크)이 예루살렘을 점령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고 박해하자, 기독교인들의 생활은 비참한 상태가 됐다. 그러므로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 지도자들과 유럽 기독교인들은 이를 크게 우려했다.
그러자 교황 우르바노(Urbano) 2세는 동로마 그리스 정교와 서로마 가톨릭을 통일해 정점에 설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사람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포함한 성지를 무슬림 수중에서 다시 찾자고 열을 올려 설득했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 선동원을 보내 이슬람에 빼앗긴 성지 탈환 분위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유럽 기독교인들은 우르바노 교황이 외치는 구호을 따라 “하나님이 십자군 원정을 원하신다”며 “데우스 로 불트(Deus Lo Vult)”라고 외쳤다. 라틴어로 Deus는 ‘하나님’, Vult는 ‘원한다’는 뜻이다.
유럽을 떠난 십자군(1차)은 1096년 7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도착했고, 도중에 이슬람군과 전투를 하면서 1099년 중반에야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많은 군인이 병에 걸리거나 무슬림의 공격을 받아서 죽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Deus Lo Vult”를 외치면서 결국 예루살렘의 무슬림들을 포위해 1099년 7월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이슬람 교도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강력한 이슬람 지도자 술탄 살라딘이 출현해 88년 만에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한 것이다. 그 후 십자군은 7차에 걸쳐 원정을 다시 떠났으나, 결국 예루살렘을 이슬람 교도로부터 탈환하지 못했다.
십자군 원정은 입으로는 “Deus Lo Vult”를 외쳤지만 실제로 교황을 비롯한 유럽의 국왕, 제후, 기사들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권력 확보, 영토 확장, 전리품 획득, 교역을 통한 이권 확보 등이 목적이었다.
결국 약 200년 동안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 결과가 실패로 끝나자, 십자군 전쟁을 주도한 교황의 권위는 약해지고 유럽 국왕들의 권한은 반대로 강화되었다.
우리나라 TV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교수 한 분이 십자군에 대해 강의하면서 성모 대성당 출입구 문 인방(문 위쪽에 위치한 수평 지지대)에 “Deus Lo Vult”라고 쓰여 있다고 설명하므로, 필자는 로마에 갔을 때 성모 대성당을 찾아갔다.
이 성당은 로마의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콜로세움을 향해 넓은 도로를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있다. 필자는 이 문구를 찾으려고 성당 출입구 인방을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고 성당 건물 곳곳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당 출입구 (로비 모양 공간)에 앉아있는 경찰 보안요원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성당은 출입문 외부에 세워진 조립식 건물 속에서 경찰 서너 명이 X레이 검색기를 통해 방문객들에 철저한 보안검사를 하고 있으며, 성당 건물 안에도 남녀경찰 보안요원 서너 명이 마치 호텔 프론트 데스크처럼 만들어 놓은 설치물 뒤에 앉아 안내겸 보안 임무를 하고 있다.
필자의 요청을 받은 남녀 보안요원들은 이탈리아어로 된 인터넷을 한참 검색하더니, 이 성당에는 그런 문구가 없다며 이름도 외우기 힘든 성당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처음 이 성당에 갔을 때는 필자 혼자였지만, 두 번째 갔을 때는 가족을 데리고 갔다(보안요원들에게 문의하였을 때). 숙소에 돌아와 밤에 영어 인터넷을 한참 동안 검색했더니, “Deus Lo Vult” 문구는 이 성당의 문 인방이 아니고 성문(聖門, Holy Door)에 있다는 정보를 찾아냈다. ‘Holy Door’는 처음 접하는 단어이므로 이것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성당 건물 밖에서 보면 문이지만 건물 안에서 보면 그냥 벽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깨워 함께 가자고 하려다, 집사람, 딸, 손녀, 외손녀 2명이 어제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지 모두 곤하게 자고 있으므로, 혼자서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다시 성당에 갔다.
그리고 드디어 성문을 찾아 성문 외부에 쓰인 문구를 찾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너무 옹색할 정도로 작다. “아, 이 작은 것이 천 년 전에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던 문구로구나!” 생각을 하면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
이른 아침에 성당에 온 덕분인지, 성당 안에 여러 시민들이 와서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조그만 초소보다 작은 여러 나무상자 속에 앉아 고해성사를 받고 있는 사제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면에 뚫어 놓은 매표소 창구 같은 곳을 통해 시민들은 사제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고해성사하는 모습을 이때 처음 보았다. 지은 죄가 있으면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왜 같은 인간을 통하여 죄 사함을 호소하는지 필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대 교황들은 세상을 떠나면 일반적으로 바티칸 성당 지하에 묻힌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 대성당에 안장된다는 뉴스를 보고, 필자가 Deus Lo Vult 문구 때문에 그 성당을 방문했던 것이 생각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로 예루살렘(옛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 교회(聖墓敎會, Holy Sepulchre Church)는 1824년부터 “Deus Lo Vult”를 문장(紋章)으로 사용하고 있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5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사도 베드로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