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서평] 대영박물관에서 다니엘 읽기
다니엘 수업
박양규 | 샘솟는기쁨 | 280쪽 | 19,800원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증거가 단순하게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사적지에서 발견된 다양한 증거들은 하나의 자료만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증거를 입증할 만한 다른 증거와 사료가 검증될 때,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로 입증된다.
18세기 이후 과학과 이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며, 모든 것을 과학적·이성적·수학적 사고로 판단하고 인식하려는 흐름이 커져갔다. 특히 과학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흐름은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나타나, 단순하게 성경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에 나타난 사건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역사적· 문학적·문서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비평 신학이 생겨났고, 비평 신학 발달은 성경의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고로 발전했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과학의 발달을 통해 인간을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꿈은 오히려 역전되어, 과학 발달이 많은 사람을 죽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일으켜, 비평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모든 사건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는 근본주의 신학 태동으로 이어졌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긍정적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성경을 기록한 시대 상황과 배경, 문화와 철학을 배제하고 무비평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할 근거가 부족했다.
이런 비판에서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맹목적 이해보다, 사건의 역사적 흐름과 그 시대가 말하고자 하는 다양한 자료와 증거, 그 시대 문헌을 통해 성경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때 성경의 역사는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박양규가 저술한 『다니엘 수업』은, 멸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남유다 왕국의 말기 상황을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입체적 해석 도구를 저자는 대영박물관의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박양규는 이미 발간한 『중간사 수업』을 통해 신구약 중간기 역사를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 어쩌면 『다니엘 수업』은 『중간사 수업』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유다 말기부터 시작해서 바벨론 포로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한 광범위한 시대적 상황을 역사적 근거를 갖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가 『다니엘 수업』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해하며 읽어가면 도움이 된다. 첫째는 왜 이스라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와 근거이다. 둘째는 바벨론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졌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세 번째는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이스라엘로 귀환하지 않았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먹고 사는 문제가 철저하게 신들의 손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시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을 말씀하셨다. 당시 이방 신들과 인간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Give and Take(기브 앤 테이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종교 제의 비용을 지불해 소원을 구하면, 신은 그 소원을 들어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서 언약 백성에게 요구한 것은 숭배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즉 당시 어떤 신들도 요구하지 않던 관계를 말씀하셨고,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백성이 관계를 맺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인 것이다(신 8:2-3).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선택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파괴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방법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방신에 대한 숭배이다. 그 이방신 숭배 기록을 저자는 대영박물관의 여러 역사적 증거를 통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 멸망 원인이 내부인지 외부인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상을 버려야 하는지 기술하고 있다.
바벨론이 가지는 의미
바벨론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침공한 그 시대 강대국이 아니다. 어쩌면 바벨론이란 나라를 통해, 점점 아버지 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와, 타협하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인물이 다니엘이다. 저자는 이 시기 다양한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책의 제목과 같이 대영박물관의 여러 자료를 사용하지만, 특히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고대 역사 기록을 통해 바벨론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또 이런 시기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어떤 분으로 묘사되었는지 증명했다.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것은 1563년 브뢰헬이 그린 <바벨탑>에 대한 해석이다(141). 그는 바벨탑을 시날 평지가 아닌 안트베르펜 중앙에 그렸다. 이곳은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안트베르펜은 특히 종교개혁가 중 루터보다 칼뱅을 지지했다. 칼뱅을 지지해 금융과 상업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금융과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칼뱅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즉 칼뱅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 자본 윤리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협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후 포로 생활 속에서,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인 것이다. 그 삶 가운데 타협하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바벨론의 풍요 가운데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관계 속에서 믿음을 지킨 다니엘을 통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다.
귀환하지 않은 다니엘
지금까지는 주변 환경과 배경에 집중했다면, 여기서부터 저자는 다니엘에 집중한다. 저자는 다니엘을 말하면서 페르시아 고레스에 집중한다. 특히 대영박물관 52관인 페르시아관에 나타난 고레스 칙령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는 고레스를 바벨론의 왕으로 표현한다. 그 이유는 페르시아가 관용 정책을 펴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고레스가 피지배국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준 결과, 이스라엘 민족이 본국으로 돌아가 신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 내용이 예레미야와 에스라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왜 귀환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들이 바벨론에서 환관장에 의해 양육됐는데, 바벨론에는 다니엘이 결혼을 했다거나 가족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왕하 20:16-18, 사 30:7)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미 다니엘이 바벨론에 거주할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이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 계획에 뜻을 정해 맞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대영박물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곳에 직접 가서 해설사의 설명을 직접 듣고 싶어졌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방법이 기록된 책이다. 그러나 구원을 어떻게 우리에게 주시는지,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 어떤 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과 역사적인 증거를 우리가 폭넓게 알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아버지로서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지에 대한 풍성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체적·실제적 증거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이뤄졌고, 이뤄져 가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대구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