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밀린 공과금이 알린 고독사…쪽방·고시원서 외로운 죽음 맞는 중장년


서울시 ‘주거취약지역 중장년 이상 1인 가구 실태조사’

조사 대상 10명 중 6명 ‘고독사 위험군’

A 씨가 생전에 거주하던 반지하방의 모습.

“편의점에서 거의 매일 술을 사갔어요.”

4월 초 서울 강서구의 한 반지하 방에서 숨진 60대 남성 A 씨를 이웃은 이렇게 기억했다. 평소 지병이 있던 A 씨는 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2주 넘게 아무도 몰랐다. A 씨는 주변 이웃은 물론이고 먼 지방에 사는 자녀와의 왕래도 없었다. 수개월째 밀린 공과금 고지서를 본 집주인이 그를 뒤늦게 발견했다.

지난달 초 방문한 A 씨의 열 평 남짓한 반지하방에는 쿰쿰한 냄새와 함께 습기가 가득 느껴졌다. 고인의 흔적은 이미 정리됐지만, 누런 벽지 곳곳에 까맣게 핀 곰팡이 흔적만은 지울 수 없었다.

화장실에는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바닥보다 높은 곳에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키 160cm인 기자가 허리를 반쯤 숙인 채 계단 세 개를 올라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허름한 화장실 창틀에는 거미줄이 잔뜩 붙어 있었다.

A 씨 집의 화장실 세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왼쪽) A 씨 집 화장실 창문에 드리워진 거미줄.

A 씨처럼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중장년층 1인 가구의 고독사 위험이 특히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19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시의 ‘주거취약지역 중장년 이상 1인 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 등 주거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조사 대상자(응답자 기준) 6만677명 중 59.7%인 3만6265명이 A 씨와 유사한 ‘고독사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 조사 대상 10명 중 6명 ‘고독사 위험군’

A 씨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고독사에 해당한다.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홀로 임종을 맞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서울시는 보통 3일이 지나 발견되면 고독사로 분류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쪽방, 고시원 등 주거취약지역에 사는 만 50세 이상 1인 가구 14만4398명 전체를 대상으로 고독사 위험도를 조사했다. 시는 조사에 응답한 사람 6만677명을 사회적 고립 여부를 묻는 설문 결과에 따라 △고위험군 1872명(70~100점) △중위험군 8421명(40~60점) △저위험군 2만5972명(10~30점 이하) 등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고위험군이 3.1%, 중위험군이 13.9%, 저위험군이 42.8% 등 10명 중 6명가량이 고독사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수조사를 통해 고독사 위험군 비율을 추정해낸 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서울시가 처음이다. 시는 조사 응답자를 대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돌봄 서비스 △안부 확인 서비스 등을 연계했는데, 중복 연계를 포함해 총 6만2526건의 조치가 이뤄졌다.

● 90%가 가족 있어도 28%가 ‘사회적 고립’

4년 전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 홀로 정착한 이모 씨(42)는 지병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을 계기로 아내와 이혼을 했다. 이혼 후 외국으로 이민을 간 아내, 두 아이와는 연락이 끊겼다. 지병에 외로움까지 더해지면서 90kg이었던 이 씨의 몸무게는 60kg대까지 줄었다. 이 씨는 지난달 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다행히도 이웃들에게 구조됐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신규 조사자(3만2825명)의 상당수는 이 씨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응답자의 90.5%가 부모, 자녀, 형제 중 적어도 1명의 가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28%는 “가족이나 지인, 직장, 종교 관계에서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1인 가구가 된 이유에 대해선 43.9%가 ‘이혼’을 꼽았다.

고독사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는 “고독사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쪽방, 반지하 등에 혼자 사는 중장년층 남성”이라고 전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장년층 남성들은 성공적인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으면서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장애’와 ‘질병’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45.7%와 8.3%로, 절반 이상(54%)이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대장암을 앓던 허모 씨(65)는 올 1월 급격히 몸 상태가 나빠져 식사를 며칠째 챙겨 먹지 못했다. 고시원 관계자가 주민센터에 신고해 허 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지난달 사망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평소 고시원 사람들과 자주 음주를 하면서 건강이 더욱 나빠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적 형편도 어려웠다. 응답자의 67.6%가 직업이 없었고, 65.2%가 월세에 살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54.6%으로 절반이 넘었다.

● 서울시 “모니터링 빈도 높이고 스마트플러그 확대”

서울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체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모니터링 빈도를 높여 나갈 예정이다. 시는 현재 주 1회에서 연 1회까지 복지 서비스 대상자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이 시스템에는 고위험군만 포함돼 있다. 게다가 자치구 공무원 등이 자체적으로 고위험군 여부를 판단한다. 시 관계자는 “통일된 기준으로 고독사 위험도 여부를 판단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먼저 상시 모니터링이 필요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전력량과 조도를 감지하는 ‘스마트플러그’를 현재(3351개)의 1.5배(5066개)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반응이 없으면 보호자와 주민센터 관계자에게 문자가 전송되는 ‘서울살피미’ 애플리케이션(앱)도 현재(1만1805명)의 2배 수준인 2만 명까지 높일 계획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주거가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단화’되는 고독사를 방치하면 지역사회 낙인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자체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자발적 고립자’도 주목해야”

전문가들은 고독사 위험군 못지않게 조사를 꺼리는 자발적 고립자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 대상자 중에서도 24.9%(3만5984명)가 조사를 거부했다. 주소 불명 등으로 방문을 못 한 20.2%(2만9214명), 부재중 7.6%(1만1006명) 등도 조사 미응답자로 처리됐다. 서울시는 이들을 대상으로 재조사에 나설 계획이지만 조사를 강제하긴 어렵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 위험군으로 낙인찍는다는 생각에 조사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며 “지역의 고용센터나 민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 자연스러운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복지재단이 발간한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도 “고립된 사람들이 가능한 자존감 훼손 없이, 자신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골목상담소’ 등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밥을 매개로 한 관계 형성

1일 낮 12시 경 서울 관악구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 앞에 도시락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관악구 대학동의 길벗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지역 밀착형 복지센터 ‘해피인’이 그런 경우다. 이곳에서는 엄격한 선정 과정 없이 이름과 휴대폰 번호, 간단한 면담을 거치면 도시락은 물론 일자리와 주거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일종의 ‘느슨한 지원 체계’를 제공하는 셈이다.

1일 낮 12시 경 기자가 방문한 해피인 앞에는 무료 도시락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이 50, 60대로 보이는 중장년층 남성이었다. 그런데 줄을 선 채 묵묵히 밥을 받아가는 여느 급식소와는 달랐다. 박보아 해피인 대표는 해피인을 상징하는 푸른 도시락 가방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쥐어주며 “오늘 몸 상태는 어떠냐”, “요새 공부는 잘 되냐” 등 소소한 안부를 물었다. 이장섭 서울대 디자인과 교수와의 협업으로 만든 앱을 통해 어제의 기분, 몸 상태, 대화 여부를 묻는 출석체크도 한다.

박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감염 위험 때문에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밥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면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이날 이모 씨(51)는 변리사 1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박 대표에게 알렸다. 이 씨와 함께 줄을 서다가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도 모두 축하해 줬다. 이 씨는 “과거에 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와 동기들은 이미 다 떠났는데 아쉬움이 남아 지난해에 다시 들어왔다”며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외로움이 가장 힘든데 해피인에 와서 소소한 교류를 이어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날 한 시간 동안 해피인에서 80여 명이 따뜻한 도시락을 받아갔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는 독거 중장년층 10여 명의 자조모임인 ‘소행모(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치과의 후원을 받아 치아 치료를 지원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우리 같은 민간 커뮤니티에 보건소, 일자리 정보 등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자원을 더욱 밀접하게 연계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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