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내부 “권력형 비리 수사 9월부터 사실상 스톱” 격앙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로비 유리벽에 비친 태극기와 검찰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시한부 박탈’로 바꾼 것뿐이다.”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여야가 수용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검찰 간부는 중재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동의한 중재안에 대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선거, 공직자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즉시 없애도록 하는 내용”이라며 “권력 수사를 원치 않는 정치인들이 ‘야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권력형 비리’ 수사 물 건너가나

검찰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중재안이 시행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 상당수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합의대로 4월 말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될 경우 검찰의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 직접 수사가 불가능해지는데, 수개월 안에 마무리하기 힘든 사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중재안 시행에 따라 경찰로 넘어가게 된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일괄 사표를 강요해 받았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고발됐다. 동부지검은 지난 달 강제수사에 착수해 아직 수사 초기 상태다. 직권남용은 검찰 직접 수사권이 폐지되는 공직자 범죄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사건과 ‘울산시장 하명 수사’의 청와대 연루 의혹 역시 규명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연루됐다는 의혹 역시 수사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한 차장검사는 “이 고문은 배임 혐의로 고발당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부패·경제 범죄에 해당하지만 (중재안 시행으로) 수사 동력을 잃은 검찰이 ‘윗선’을 밝혀내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직권남용 혐의가 의심될 경우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고 했다.

● “여야가 흥정하듯 졸속 합의”

사상 초유의 지휘부 집단 사표 사태를 맞은 검찰 내부는 격앙된 분위기다.

검사가 경찰 송치 사건을 수사할 때 ‘범죄의 동일성, 단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만 보완할 수 있다는 중재안에 대해 배성훈 대검 형사1과장은 “보이스피싱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하다가 보이스피싱 범죄단체 혐의를 알게 돼도 직접 보완수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하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발생할 선거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공백 우려도 나온다. 최창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관기관 간담회 등 대응을 해야 하는데 직접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어떤 자격으로 준비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다른 검사는 “선거 범죄 공소시효는 6개월로 다른 범죄보다 짧다. 경찰이 5개월 수사했는데 미진한 상태로 검찰에 보내면 시간이 촉박해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혀를 찼다.

김오수 검찰총장 등 검찰 지휘부가 중재안에 반발해 ‘일괄 사퇴’한 것에 대해서도 내부에선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내부망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실, 입법조사관실 문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국회를 드나들며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다 때려치우고 나가는 건 무슨 경우인가”라고 했다. 다른 검사도 “중재안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있던 것은 아닌가. 무책임하게 사직하고 나가버리면 안된다”고 썼다.

법조계에선 박병석 의장이 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중재안을 밀어붙인 것과 관련해 “졸속 중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법원장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형사법을 고칠 때는 오랜 기간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여야 원내대표들이 의장실에 모여 흥정하듯이 졸속 합의를 한 것”이라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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