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프간 선교사의 급박하고 애절했던 탈출 과정 : 국제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도. ⓒPixabay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전 세계 많은 기독교인들이 애통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최근까지 현지에서 사역하다 24일 미군 수송기를 통해 탈출한 미국계 한인 A 선교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선교사 안전과 현지인 보호 차원에서 모든 명칭은 이니셜로 처리되며, 사진 역시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편집자 주).

A선교사 부부는 시애틀 평안교회에서 인터콥 인터내셔널(Inter CP International, 최바울 본부장) 선교사로 파송받아 아프가니스탄의 한 도시에서 몇 년간 섬겨왔다

인터뷰 도중 지하교회 성도들과 양육하던 청년들이 눈에 밟힌다던 그는, 특히 5년을 동고동락한 현지 동역자 가족과 천신만고 끝에 공항 게이트 앞까지 다다랐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던 사연을 나눌 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탈출 직전까지 A선교사 부부는 섬기던 도시 내 6개 의료 클리닉을 오픈해 병든 이웃을 돕고,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을 가정으로 초대해 전도하는 사역을 하고 지하교회도 섬겨왔다. 활발한 연합사역을 통해 지하교회 성도들이 40여 명까지 부흥하는 기쁨도 맛보던 차였다. 탈레반이 서서히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던 7월까지도 총 45명의 새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 정도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놀라울 정도였다.

기대와 달리 탈레반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한 달 반 전 본부의 안전지역 대피 권고가 내려와 조금씩 사역을 정리하며 준비하던 차였다. 사역지의 상황이 심상치 않자 결국 탈출권고가 내려온 다음 주 선교사 연합 기도회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하게 된 A선교사는, 예레미아 10장 17-18절 말씀을 나눴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짐을 꾸리고 떠나야 할 때이며, 과연 하나님께서 이 땅 사람들을 내어 던지심으로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실 것이지만, 이어지는 19절 말씀처럼 이 상처와 아픔을 참고 견디면 이제는 직접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서로를 권면했다.

그는 “허겁지겁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사인을 받았기 때문에 탈출 전부터 사역을 정리하고 현지인 리더들을 세우고 있었다. 탈출 하루 이틀 전까지도 섬겼던 지하교회 성도들을 찾아 다니며 격려하고 믿음 안에 굳게 서라고 권면하고 도왔고, 대학생들도 최대한 만나고 남겨진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섬길 수 있는 한 장학금도 전달했다. 당시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아무리 탈레반이라도 이곳에는 들어오기 힘들고, 들어온다고 해도 최소 2-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15일 새벽, 결국 탈레반에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탈출을 서둘러야 했다”고 회상했다.

22일 새벽, 모든 것이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탈출을 결심하고, 아내와 한 여선교사가 같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무작정 공항으로 향했다. 5개의 게이트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 곳으로 갔는데, 하필 탈레반이 지키는 곳이었다. 두 여성은 외국인이어서 쉽게 통과할 수 있었지만, 수염을 기르고 있던 A선교사는 현지인으로 오해받아 오히려 매를 맞고 총으로 위협을 받은 끝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시민이라고 여권을 보여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다른 게이트로도 진입을 시도했지만, 정부군들이 지키며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이날은 포기하고 살던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탈레반이 들이닥쳐 선교사 부부와 이들의 사역을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집으로도 가지 못한 이들은, 비영리단체의 현지 동역자 집에 머물며 미국대사관에 연락해 도움을 구했지만, 어떻게든 공항으로 오라는 대답밖에는 듣지 못했다. 얼마 후에 다시 연락이 온 것도 일단 공항에 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이어서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침 기다리던 비자를 받은 동역자의 딸이 밤 12시 출발해 가족과 함께 공항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를 따라 달리고 있는 현지인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를 따라 달리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 ⓒSBS 뉴스 보도화면 캡쳐

A선교사는 “연락을 받고 우리도 새벽 5시에 공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시간은 우리가 파송받은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저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었고 우리 믿음의 공동체에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지켜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뗐다. 공항에 가보니 들어갔다던 동역자 가족도 못 들어가고 있었다. 게이트 앞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뤄 1km 정도로 빽빽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칫하면 압사당하거나 서로를 놓쳐 생사를 확인할 수 없을 상황에서, 제가 앞장서고 아내, 여선교사님, 동역자 가족들이 서로의 어깨를 꽉 붙들고 일렬로 서서 1km의 인파를 한 걸음 한 걸음 뚫고 갔다. 길이 확 열린 건 아니지만 신기하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열려서 1시간 후에 군인들 앞에까지 갈 수 있었다. 군인과 군중 사이에 시궁창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데를 지나 허리 정도의 턱에 올라가야 군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데, 과연 저 턱을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 올려줬다. 전쟁통에 이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그 모든 과정이 정말 간절히 기도해준 성도들 덕분이라고 감사를 돌렸다.

기적적으로 턱에 올라 미국 여권을 꺼내 들고 도와 달라 있는 힘껏 외쳤지만, 미군이 없어서인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미군이 나타나 미국 시민임을 확인하고 아내를 들여보낸 뒤 여선교사도 들여보내려다가 현지인 가족은 절대 안 된다고 하자, 여선교사가 그러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억지로 등을 떠밀어 겨우 넘겼다. 마지막 남은 A선교사 역시 현지인 가족이 여기 남으면 죽는다고 눈물로 통사정을 해도 결국 통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영어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채고, 결국 A선교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들은 괜찮으니 가라고 오히려 위로를 했다. 이 과정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야 했던 선교사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후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군수송기를 타기까지 10시간을 기다렸고, 450여 명이 빽빽이 앉아 3시간 반 만에 인근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도착의 기쁨도 잠시, 군 수송기 5대가 비슷하게 도착해 수속을 한다고 8시간이 넘도록 문을 열어주지 않아, 아이들은 까무러치고 어른들 역시 질식할 수도 있던 상황. 의사의 도움을 구하는 외침에 나선 여선교사는 의사로서 피곤할 틈도 없이 사역을 이어갔다.

결국 현지시각 새벽 4시, 수송기에서 나와 열기가 채 식지 않은 활주로에서 잠시 잠을 자고 11시간을 기다리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때 같이 비행기를 탄 이들이 120명 정도인데, 시민권자인 이들을 가장 늦게 불러서 들어가 보니 비즈니스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로해 주신다는 생각에 너무 감격하고 감사하며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A선교사는 “허겁지겁 겁에 질려 탈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사인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모든 순간 하나님의 강권적인 임재하심과 성도님들의 간절한 기도를 절절히 체험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하다. 남겨진 이들에 대한 아픔과 눈물은 지금도 멈추지 않지만, 후에 현지인 리더에게 받은 사진을 보며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선교사의 권면으로 예배에 나오던 지하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다. 탈레반의 핵심인 파슈툰족 청년과 역사적으로 원수로 여기는 하자라 청년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을 보며, 이것은 절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님을 겸손히 고백하게 됐다. 분명히 새로운 부흥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아프가니스탄을 새롭게 하실 것을 믿고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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