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봉오동 전투’ 101년만 귀환···文 눈시울 붉혔다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던 홍범도 장군(1868~1943)이 광복절인 15일 태극기와 함께 귀환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사망 연도 기준 78년만이자, 봉오동ㆍ청산리 전투(1920년) 승리 이후 101년 만이다.

특별기를 통해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연합뉴스

특별기를 통해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KC-330)는 카자흐스탄을 출발해 이날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서울공항에서 직접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맞이했다.  
 
‘장군의 귀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문 대통령은 홍 장군의 유해가 도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봉환식에서는 별도 연설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오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은 역사적인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 독립군 사령관이었으며, 뒷날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며 “유해 봉환을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게 돼 매우 기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열린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열린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또 “광복 직후인 1946년 윤봉길·이봉창 의사를 시작으로 이날 홍 장군까지 애국지사 144분의 유해가 고향 산천으로 돌아왔다”며 “독립 영웅들을 조국으로 모시는 일은 마땅한 책무이자 영광으로 여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홍 장군의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진입한 뒤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통해 홍 장군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엄호 비행에는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기종이 모두 투입됐다. 홍 장군 유해가 내려질 때는 군악대 성악병의 독창 ‘올드 랭 사인’이 울려퍼졌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2019년 4월 한ㆍ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요청하면서 추진됐다. 당초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인 지난해 3ㆍ1절에 유해 봉환이 결정됐지만, 코로나 상황때문에 연기돼 오다 17일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이날 유해 봉환이 이뤄졌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안장지인 대전현충원으로 옮겨졌다.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16~17일 온ㆍ오프라인 국민추모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사진은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 모습.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며 간도와 극동 러시아에서 일본군을 토벌했다. 특히 홍범도ㆍ최진동 등이 이끈 1920년 봉오동 전투는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에게 상처를 입힌 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꼽힌다. 홍 장군은 1937년 옛 소련의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해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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