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성대한 굿판(민 24:10~17)


환란과 핍박의 굿판 중에 신앙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민 24:10)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아홉 살 때 정신적, 영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3세 때는 주의회에 진출하려다 실패했습니다. 29세에 주 의회 대변인 선거에서 패배했고, 34세 때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며, 39세 때 또다시 도전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45세엔 미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47세 때엔 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도 패배했습니다. 49세에 도전했던 상원의원 선거에서 또 패배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51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이때가 1861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사실 그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경을 읽고 믿음이 깊어졌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라(Let’s go)”는 말씀을 들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고, 두려워 떠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워말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바울에게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시며 이방의 사도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에는 언제나 놀라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갈 길을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발람이라는 무당이요 선견자입니다. 발람은 유명한 복술가요, 소문난 무당이었습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살았는데 모압과는 6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 일은 기원전 1200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지금으로부터는 대략 3200년 전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 22:12) 그럼에도 발람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 모압 왕 발락에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압 땅에 도착한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제단을 쌓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민 23:1)

제단을 무려 일곱 개를 쌓고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한다는 것은 최고의 굿판을 벌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굿판이 벌어져 풍악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발람의 신기어린 신명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발람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랍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민 23:7~8)

아니 이럴 수가!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지금 입을 열어 예언을 하고 있는 선지자 발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의 입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 대신 축복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을 틀어막아도 소용없었습니다. 분에 넘치는 녹을 받았기에 저주를 선포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가 하고 있는 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이었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창대해 질 것을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발람은 고향에서 길을 떠날 때도 신기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타고 가던 나귀가 칼을 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발견하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더니, 포도원 사이의 좁은 길에서는 몸을 담벼락에 대고 짓누르는 바람에 발람이 노하여 나귀에게 채찍질을 했던 것입니다. 나귀가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민 22:28)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가서는 안 될 길을 떠나는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며 부끄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나귀에게 책망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번에는 발람 선지자의 입을 열게 하시더니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저주가 변하여 축복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을 열게 하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나귀의 입도 여시고, 무당의 입도 열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시는 분,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문을 알지 못한 모압 왕 발락은 노기충천하여 소리쳤습니다.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민 23:11)

첫 번째 굿판은 이렇게 개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락 왕은 발람을 비스가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비스가 산은 그 일대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명당자리였습니다. 그 명당자리에서 두 번째로 성대한 굿판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또 다시 발람의 입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민 23:23)

당대 최고의 무당이요 점술가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백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칠 복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용하다하는 주문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그 힘과 효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무당이 아무리 용하다 할지라도 사탄의 하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무당의 말, 역술가의 말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것이 사람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발락왕은 세 번째 굿판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번에는 브올 산이었습니다. 브올 산 꼭대기에서 또 다시 성대한 굿판을 벌린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굿판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람의 입에서 이런 예언이 선포된 것입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민 24:5~7)

발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의 말에 발락 왕은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발락 왕의 계획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성대한 굿판으로 하나님만 존귀해 지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은 만천하에 선포되었습니다. 발락 왕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발람에게 떠나가라고 소리쳤고, 발람 선지자는 떠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멸하리로다”(민 24:17)

한 별이 야곱의 후손에서 나온다? 이 별이 누구입니까? 유대 땅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1200년 전에 무당 발람의 입을 빌려서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당대 최고의 무당 발람을 초청하여 성대한 굿판을 세 번씩이나 벌였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승리였고, 택한 백성들의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피할 곳 없는 위기를 겪었을 때도 결론은 이스라엘의 승리요 호산나 찬양이었고,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던져 넣었을 때도 결론은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었습니다.

약 2년 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전파되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어둠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독사의 독침처럼 사람들의 일상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지난 2000년 동안 전쟁 중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예배가 멈춰서는 참담함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교회가 바이러스의 온상인 것처럼 악담을 퍼붓고 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과 악령들은 때를 만난 듯 교회를 공격합니다. 마치 성대한 굿판을 벌였던 발람과 발락의 행위처럼 심지어 국회에서는 교회를 해산하는 법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보호받으면서 성장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환란과 핍박 중에 그 진가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처럼 어둠 속에 빛을 밝히고 얼음을 뚫고 새 싹이 나오듯, 모진 고난 속에서 찬란한 승리의 축배를 드는 거룩한 승리자들이 다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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