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인생은 이토록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소강석 2021년 3월 첫째 주

▲소강석 목사가 총신대 정이사 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어쩐다지요. 야속하게 가 버린 분의 생각 때문에요.”

과거 유달리 저에게 문자를 자주 보내주셨던 한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미주알고주알 같은 이야기, 삶의 고달픈 사연까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삶이 힘든 만큼 관심을 갖고 기도해 달라는 의미였겠지요. 어떨 땐 “목사님께서는 어쩜 그렇게 시도 잘 쓰시고 노래도 잘 하세요. 짝짝짝” 하는 문자도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목양적 차원에서는 답을 해 줄 때도 있었지만 그리 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엄연히 저는 목회자이고, 그 분은 여성도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성가대도 열심히 하셨고 성가대를 서지 않는 저녁예배 때는 꼭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에 은혜를 받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문자가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월 중순쯤 되었을까요. 2부 예배를 마치고 본당에서 4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길에 그분과 마주쳤습니다.

왠지 얼굴이 창백하게 보였습니다. 화장을 안 해서 그랬겠지 하고 저는 “집사님, 안녕하세요?”만 하고 제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제 방에서 특별 기도를 받을 분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갈 무렵 그 분의 소천 광고 소식이 강단으로 올라왔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동명이인인가 하고 강단에서 공개적으로 물어보았더니, 그 분이 맞다는 것입니다.

저는 방망이로 뒤통수를 사정없이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역자회의 때 담당 교구교역자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내용인즉 몇 년 전에 난소암에 걸려 완치가 되었는데, 연말에 다시 재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암치료 받는 것을 거부하다 갑자기 위독해져서 그만 천국으로 떠났다는 것이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 분은 암과 투병을 할때, 나에게 기도해 달라는 한 마디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까. 암의 고통이 그렇게 컸을텐데, 왜 힘들다는 문자 한 마디, 위로 받고 싶다는 한 마디의 문자도 보내지 않았을까. 고통스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 어떻게 그 고통과 싸웠을까.’

저는 월요일 오전부터 용인시장님과 함께 지역 영세 상가를 돌아다니고, 오후에는 총회회관에 가서 총신대 정이사 문제 해결을 위하여 회의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 장례식장에 찾아가 가족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담당 교역자에게 물어보니 이미 아침에 발인을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소리를 버럭지르며 나무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데려와서 기도를 받게 해야지요. 교인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겁니까.” 당장 남편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곤하게 주무시는지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성도가 쓰던 핸드폰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가 문자를 보낸다고,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 어찌 문자를 보겠습니까마는.

“집사님! 어쩌면 그리도 야속하게 떠나셨나요. 오늘 조문을 가려고 했더니, 아침에 발인했다 해서 너무 기가 막혔어요 (중략) 천국에서라도 이 목자의 심정을 알아주시라고, 부질없는 문자를 보내봅니다. 이젠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세요.”





소강석 2021년 3월 첫째 주

▲소강석 목사가 보낸 문자 메시지.

그날 저녁은 도대체 잠이 안 와 거의 꼬빡 밤을 새웠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쓴 ‘어쩐다지요’라는 시가 맴돌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당신 생각으로 / 나는 날이 새고 / 날이 저뭅니다 (중략) 어쩐다지요 / 나도 말리지 못합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애달픈 연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부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 주세요. 이렇게 야속하게 떠나버리면 안 되잖아요.”

이틀 후 남편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연거푸 누구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진짜 소강석 목사님 맞느냐”고 엉엉 우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담임목사님이 맞으십니까? 집사람을 일찍 데려간 하나님이 원망되어서 목사님도 한동안 미워했습니다.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죽고 싶네요.” 제가 전화로나마 위로하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인생은 이토록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그리움이 있고, 그 그리움은 아름다운 시와 음악과 예술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죽음 너머에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원한 그리움 속에 살고 죽는 것이 아닐까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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