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 법정 빵 터진 조영남의 최후진술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1〉 미술 대작 사건

가수·방송인·화가·저술가인 조영남씨가 인생 스토리를 중앙SUNDAY에 매주 연재한다. 쎄시봉, 미술품 대작 법정 공방을 관통하는 우리 대중문화사다. 사진은 서울 자택 작업실에서의 모습. 신인섭 기자

가수·방송인·화가·저술가인 조영남씨가 인생 스토리를 중앙SUNDAY에 매주 연재한다. 쎄시봉, 미술품 대작 법정 공방을 관통하는 우리 대중문화사다. 사진은 서울 자택 작업실에서의 모습. 신인섭 기자

아버지 김종해 시인과 함께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요일 시인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용건은 이번에 또 책 한 권을 내자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문학세계사를 통해 수필집 『조 아저씨 이야기』라는 책을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70~80% 그린 화투 그림
사기로 기소된 후 방송 등 올스톱
재판 받은 5년 동안 ‘유배’ 생활

“조영남 아이디어면 그의 그림”
진중권, 1심 때 나와 올곧게 증언
3심 때 증인으로 채택 안 해 미안

‘미술 대작’ 판례 없는 세계적 판결
음대 후배 여변호사가 국선 변호인
“무죄” 순간 굴곡의 삶 주마등처럼…

10여 년 만에 만난 옛 친구 김요일의 책을 내자는 청원이 고맙기는 했지만 최근의 내 심경을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컨대 더 이상 나는 글을 쓸 수가 없다는 요지의 궁색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말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글쓰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과 ‘조영남 미술 대작(代作) 사건’이라는 5년간의 긴 재판을 치르며 기진맥진한 상태인 데다 특히 그 긴 세월에 꾸물꾸물 글을 써서 이미 두 권의 책을 냈고, 그 책을 홍보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TV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몸 상태가 총체적으로 바닥이 난 상태였다. 책을 내자니… 그것도 내 삶의 굴곡이 담긴 라이프 스토리를…. 내 성격에 무슨 겸양을 떠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그러했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등 책 두 권 펴내
 
나이 80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까(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아이고! 조영남이 어느새 그렇게 늙었나’ 하시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그렇게 됐다. 76세다) 우선 읽고 쓰는 데 금방 눈이 피로해지고 아파 왔다. 그런 상태로 나는 지난 5년이라는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해오면서 두 권의 책을 내게 되었다. 유배 생활이라고 하는 이유는 ‘대작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는 순간부터 즉시 나의 모든 방송 생활과 미술 전시 등이 한꺼번에 올스톱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직장(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 매일 방송)을 잃게 된 나는 놀면 뭐하냐는 마음으로 두 가지 일을 근근이 이어 왔는데 한 가지는 그림을 그려대는 일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글을 써두는 일이었다.
 
독자 제위께 한마디 부탁한다. 행여 기소당하지 마시라. 재판, 그건 할 짓이 아니다. 내 재판은 무려 5년이나 걸렸는데, 간단히 말해 1심에서 유죄를 받고(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내 쪽에서 항소로 올려 이때는 무죄를 받았다(실없는 이야기지만 무죄 때는 여성 판사님이었다. 속으로 나는 참 여복 있는 놈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검찰 쪽에서 상고를 하게 되어 있다. 장담하건대 나는 5년 재판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지구 상의 모든 나라를 통틀어 최고급으로 화려하고 찬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완벽 그 자체다. 1심에서 유죄를 받아 억울하면 2심으로 올릴 수 있고, 2심에서 형량이 턱없이 낮으면 검찰 쪽에서 손수 3심인 대법원으로 올리고, 그러는 동안 피고 입장에서는 변호사 비용 등으로 무참히 돈이 깨지는데 나같이 돈 없는 노인의 경우 국선 변호사 시스템도 있다. 다시 말해 돈 한 푼 안 드는 재판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휴게소 화장실과 법체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라고 감히 말한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그런 경험으로 누구보다 나는 추미애, 윤석열의 법적 대혈전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멋진 법체계를 유지시켜 준 현 정부에게 박수를 보내자는 청원을 올리는 바다.
 

2017년 1심 유죄판결 직후 조씨가 그린 자화상. 신인섭 기자

2017년 1심 유죄판결 직후 조씨가 그린 자화상. 신인섭 기자

문학세계사 김요일 이사에게 글을 못 쓰겠다는 말을 한다는 게 여기까지 왔는데, 재판 중에 아픈 눈을 비비며 꾸역꾸역 글을 써서 한꺼번에 두 권의 책을 낸 게, 한 권은 현대미술에 관한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고, 또 다른 한 권은 내가 평생 추종해 왔던 요절 시인 우리의 이상(李箱)을 셰익스피어 바로 밑으로 띄우기 위한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이라는 책이다. 재판 중에 책을 내는 것은 행여 나의 재판 결과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속셈으로 비추어질 듯해서 재판을 끝낸 다음에 곧바로 출간했던 것이다.
 
이미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예술책을 낸 적이 있는데도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쓴 이유는 따로 있다. 정작 미술 재판을 치르다 보니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몰라도 너무 심하게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몇몇 변호사나 검사님, 판사님들도 현대미술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것 같다는 의혹 때문이다. 그렇다, 현대미술의 원리는 내가 생각해 봐도 알아먹기가 어렵다. 내가 걸린 미술 대작 사건의 경우, 내가 아닌 타인(조수)이 70~80%를 그린 그림을 내 그림으로 팔아먹었으니 이걸 어떻게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가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미술 이론을 가장 두텁게 터득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홀연히 나타나 나를 죽기살기로 옹호했던 이유가 바로 미술 원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99% 타인이 대신 그렸어도 아이디어(화투)가 조영남한테서 나왔다면 그건 조영남 그림이 맞는 것이다. 그게 현대미술의 원리다. 그래서 책 제목을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고 정한 것이다.
 
내 재판은 다행히 대법원의 판결도 무죄가 선고되었다.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이겠지만, ‘조영남의 미술 대작’ 사건은 실로 세계적인 판결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대작 사건’이 재판정에 올라왔을 때도 변호사나 검사나 판사도 내 사건 사안에 대한 판례를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 재판은 현대미술 약 150년 만에 최초로 생긴 재판이었던 거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 조영남 재판을 대법원 공판정 안에서 소위 공개 공청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 성사된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판결을 예상해서 명명백백하게 판결하겠다는 의도였다. 피고인인 나한테도 정중하게 공청회의 허락 여부를 물어왔다. 나는 물론 담담하게 오케이했지만 속으로는 ‘와! 대박이다. 찬스다!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나한테 부여해 주는구나!’라고 쾌재를 불렀다. 나에게 주어진 대비책은 변호사 한 명과 증인 한 명을 대동하는 것이었다.
  
대법 공개 공청회 제안에 내심 쾌재
 
변호사 한 명은 나한테는 빌어먹을 놈의 ‘돈’이 드는 일이었다. 아! 이 일을 어쩌나 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칭 국선 변호인 강애리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고, 더구나 국가가 배정한 국선 변호인이라서 데면데면 알았노라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저쪽에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직계 후배예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저는 서울 음대 작곡과 출신 변호사입니다”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나와 같은 음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벌써 10여 년 전에 명예 졸업장을 받았고, 그 후로는 정식 졸업생으로 행세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내가 아는 최초이자 최후의 서울 음대 출신 변호사였다. “오케이! 당신이 나의 소중한 변호사입니다!”(내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이후 대법정에서 멋들어지게 나를 변호했다.)
 
이젠 증인 채택만 남았다. 이 글을 통해서 나는 진중권 교수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 나는 누가 봐도 사건 초기부터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나를 옹호하고 직접 1심 때 증인석에 출두해 올곧게 증언을 해준 진 교수에게 증언을 부탁했어야 옳았다. 그런 내 뜻을 주위에 내비치자마자 내 측근들이 항의해 왔다. 진 교수는 너무 정치적이고 사정없이 현 정부에도 쓴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현 정부 밑에 있는 대법원인데 진 교수가 나서는 것 자체가 역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화랑협회장을 지낸 정치색 일절 없는 표미선 표화랑 대표를 증인으로 정하고 공청회에 임했다.
 
나는 지금 겁 없이 큰소리를 친다. “대한민국 연예인 중에 서초동 대법원 넓은 법정에서 특급검사 네 명과 대법관 네 명을 상대로 전 세계적 공개 재판을 받아본 사람 있으면 내 앞으로 나서봐!”
 
나는 최후의 진술을 활용해 대한민국 재판의 분위기를 심각성에서 온화함으로 확 바꾸고 싶은 생각에 최후진술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끝맺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어르신들 말씀에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하는 법이라고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래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봅니다.”
 
내 말에 웃음이 피어났고 그로부터 1개월 후, 나는 무죄라는 최종선고 서신을 받게 된다.
 
휴! 이 모든 일을 끝내고 “이젠 더 이상 글을 못 쓰겠다. 더는 글을 쓰지 않을란다” 했는데 꺼칠 무쌍한 스무 살가량 연하의 후배가 나보다 열 살 정도 나이 들어 보이는 선배의 모습으로 나타나 글을 다시 쓰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대법원 법정에서 "조영남 무죄!”라는 판결을 듣는 순간 ‘번쩍’하며 내가 지나온 다사다난했던 굴곡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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